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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4] 수학: 독서 노트

과학사통론1 - 4주차 독서 노트 (2018. 3. 23)

수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조장현

 

 

Glen Van Brummelen, Heavenly Mathematics: The Forgotten Art of Spherical Trigonomet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pp. 1-109.

W. R. Laird, “Archimedes among the Humanists”, Isis 82(4), (1991), pp. 628-638.

John Dee, “The Mathematicall Praeface to Elements of Geometrie of Euclid of Megara”

Jennifer M Rampling, “The Elizabethan mathematics of everything: John Dee's Mathematicall praeface’ to Euclid's Elements“, BSHM Bulletin, 26(3), (2011), pp. 135-146.

Peter Dear, Discipline and Experience: The Mathematical Way in the Scientific Revolution (Chicago and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p. 151-179.

데카르트, 홍성욱 편역, 과학고전선집,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pp. 289-310.

Guicciardini, Niccolo, Isaac Newton on Mathematical Certainty and Method (Cambridge, Mass: The MIT Press, 2009), pp. 331-338.

 


 

1. Glen Van Brummelen, Heavenly Mathematics: The Forgotten Art of Spherical Trigonomet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pp. 1-109.

 

Chapter 1. Heavvenly Mathematics

1장의 주제 : 평면 삼각법 / 눈과 생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기반으로 논의 전개

목적은 달까지의 거리 구하기.

지구의 모양 : 구형.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쭉 지구는 구형이라 생각했다. (Strabo의 선채 관찰, Aristotle의 월식 관찰)

지구의 크기 : 기원전 3세기 퀴레네의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 저자는 대신에 10-11세기 활동했던 al-Biruni의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방법을 통해서 지구의 반지름 값을 약 6238km 정도로 얻는다. 이어서 지구의 지름을 계산하면 약 39,194km, 실제 값인 약 40,000km과 비교하면 거의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정확성을 보여준다.

삼각 값trigonometric value : 위에서 지구의 크기를 계산할 때 cos값을 사용했다. 하지만 아직 삼각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다시 고·중세 천문학자들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목표는 사인 테이블을 계산하는 것.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y가 알마게스트(수학적 집대성Mathematical Collection)에서 사용한 방법. sin30°sin45°는 단위원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45° 값 구할 때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사용하던데 프톨레마이오스는 무리수 값을 인정했을까?) sin90°=1. 피타고라스 정리를 사용하여 수고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sinθ를 알면 sin(90°-θ)도 알 수 있음). 프톨레마이오스는 sin36°를 정오각형을 사용하여 구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는 sine addition law를 사용하여 이미 알고 있는 두 sine 값으로 새로운 sine 값을 구했다. 하지만 그는 sin3°에서 sin1°를 구할 수 없었다. 이 문제는 각을 삼등분하는 난문이었다. 예측 천문학predictive astronomy의 전체 체계는 수학적으로 이 문제에 의존하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기하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근삿값을 사용했다. (반각공식과 각-sine값의 대소관계 이용) 이제 모든 sine 표를 채울 수 있다.

한편 12세기에 활동했던 al-Samaw'al16세기의 Giordano Bruno는 이러한 수적인numerical 방법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 수학적 방법은 16세기 동안 삼각법 테이블의 기초를 이루었다. (Georg RheticusOpus palatinum, 1596) 그런데 150년 전에 이미 이란 천문학자 al-Kashisine 1° 문제에 접근하는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삼배각 공식을 통해 sin1°에 대한 삼차방정식을 얻을 수 있었는데, 삼차방정식 풀이는 125년 뒤 Gerolamo Cardano에 의해 얻어졌다. 따라서 al-Kashi는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계속 반복해서 계산함으로써 한 값으로 수렴시키는 수학적 방법(fixed point iteration)을 이용해 sin1°의 값을 16자리까지 얻었다.

지표면부터 달까지의 거리 : 이미 프톨레마이오스가 성취. 그것은 시차parallax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Chapter 2. Exploring the Sphere

북극North Pole, 천구 적도celestial equator, 황도ecliptic, 황도경사obliquity of the ecliptic, 주야 평분시equinox(춘분spring equinox/추분autumnal equinox), 지점solstice(하지summer solstice/동지winter solstice)

고대 바빌로니아인이 처음으로 황도를 360등분함.

천구 좌표 : 천구의 기준은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두 점 중 춘분점. 별에서 적도까지 내린 수직선의 길이가 적위δ, declination. 기준점으로부터 수직선과 적도가 만나는 점까지의 길이가 적경α, right ascension. αδ 두 값을 사용해서 별의 위치를 표시한다.

때로는 황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적도와 마찬가지로 황경λ, ecliptic longitude와 황위β, ecliptic latitude를 정해서 위치를 표시한다.

지평원horizon circle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기준점은 북점north point가 되고, 이를 기준으로 방위azimuth와 고도altitude를 정한다. 그런데 적도 좌표계와 황도 좌표계는 변하지 않지만, 지평원 좌표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천체의 운동 : 천체의 운동을 표현할 때는 적도 좌표계를 사용해야 한다. right ascension α는 주로 각도가 아니라 시간의 단위로 표시한다. 한편 기원전 2세기 로도스의 히파르쿠스는 태양의 운동을 면밀히 관측해서 태양의 속력이 달라진다는 것, 즉 춘분점에서 추분점으로 갈 때가 다시 돌아올 때보다 더 느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태양이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인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배치되었다. 따라서 히파르쿠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의 위치를 태양의 궤도 중심에서 다른 곳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춘분점에서 하지점까지 태양이 이동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기 때문에 봄이 다른 계절보다 더 길어졌다. 그런데 히파르쿠스는 지구를 태양 궤도의 중심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움직여야 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chord function를 개발했고, 이것이 삼각법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chord lengths와 기초적인 기하학으로 중심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태양 궤도의 편심 거리eccentricity에 대한 문제였고, 첫 번째 삼각법 문제였다.

 

구면 기하학 :

구면에서 직선이란 없다. 직선 경로는 대원great circle이다.

평면에 의해 생긴, 구의 모든 단면은 원이다. 구 표면상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line segment는 대원의 호arc이다. angle은 두 대원 평면 사이의 각이다.

 

구 표면에서의 도형 : lune, 삼각형. 어떤 각이든 구 표면상의 호로 표현 가능하다.

구면 삼각형spherical triangle : 삼각형의 각 변의 길이를 180°로 한정한다. (1] 180°가 넘는 삼각형을 넘지 않는 삼각형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 2] 정리들이 복잡해지기 때문)

구면 삼각형의 세 번째 변의 크기는 나머지 두 변의 크기를 더한 것보다 크다. 유클리드의 증명을 사용할 수 있다. 구면 기하학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이지만 평행선 공준parallel postulate을 제외한 모든 공준은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Elements 1권의 정리 20부터 29까지는 구면기하학에서도 성립한다. 이를 통해 구면 삼각형의 모든 변의 합은 360°를 넘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변의 크기와 마찬가지로 삼각형의 한 각도 18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한다. 삼각형의 각의 합에는 최솟값이 있다. al-Biruni의 스승 Abu Nasr Mansur의 방법. 극삼각형polar triangle의 정의. 극 삼각형의 극 삼각형은 원래 삼각형이다. (dual relation) 극삼각형의 변들은 원래 삼각형의 각들의 보각supplement이고, 극삼각형의 각들은 원래 삼각형의 변들의 보각이다. (polar duality theorem) 이 정리로 우리는 삼각형 각들의 합의 최솟값이 180°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구면 삼각형의 변들의 합은 최소 부터 최대 360°. 각들의 합은 최소 180°에서 최대 540°이다.

 

Chapter 3. The Ancient Approach

로도스의 히파르쿠스의 생애와 업적은 알기 힘들다. 1세기 말 알렉산드리아의 메넬라오스는 Sphaerica를 썼는데, 그리스어 원본은 소실되었고 아랍어와 라틴어 번역본?만이 남아있다.

메넬라오스 말고도 구면 기하를 다룬 인물들이 많았다. Autolycus of Pitane(On a Moving Sphere, BC 4), Theodosius of Bithynia(히파르쿠스 이후, Spherics), Euclide(Phaenomena). 하지만 이 책들은 모두 정량적이지 않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메넬라오스의 정리는 황도 좌표계를 적도 좌표계로 바꾸는 변환과 연관이 있다. 정리를 사용하여 sinδ=sinλ·sinε tanα=tanλ·cosε 이라는 변환식을 얻을 수 있다.

Abu Sahl al-Kuhi는 황도의 일부가 지평선 위로 떠오를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기 위해 천착했다. 그는 왜 알마게스트에 이미 증명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증명을 시도했을까? 저자는 메넬라오스 정리의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만을 사용해서 정리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쨌든, al-Kuhi는 그 논증을 사용해서 메넬라오스 정리를 변호한다.

 

 

2. W. R. Laird, “Archimedes among the Humanists”, Isis 82(4), (1991), pp. 628-638.

뉴튼은 series and fluxions 방법을 1664-66년 사이에 만들었고, 1690년대까지 계속 개선했다. 그는 필사본의 형태로 그것을 유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쇄본을 만들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복잡하지만, 주된 이유는 논쟁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1673년에 런던에서의 외교 업무를 마친 후 파리로 돌아와 미적분 연구를 완성했다. 그가 성취한 수학 이론은 뉴튼의 것과 똑같았다. 그는 보통 기호만 다루는 사람으로 평가되지만, 그것은 편협한 단순화이다. 그가 수학적 기호에 관심을 기울인 동기는 넓은 철학적 어젠다에 있었으며, 1675년 초 연속체continuum의 문제에 대해 헌신하며 미적분의 근본에 대해 숙고했다. 그는 1676년에 하노바로 간 이후 수학적 성취를 인쇄하기 시작했다.

뉴튼이 라이프니츠에게 1676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서 편지를 보냄으로써 논쟁이 시작됐다. 라이프니츠는 1677년에 답신을 했고, 한동안 연락이 오가지 않았다.

뉴튼은 프린키피아를 출간하면서 두 번째 권의 Lemma 2에 대한 주석에서 라이프니츠의 발견을 언급했다. 그는 예전에 제시하지 않았던 직접적인 방법에 대한 규칙들을 그곳에서 제시했다. 저자는 방법을 Lemma 2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을 라이프니츠를 의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뉴튼은 그곳에서 라이프니츠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것과 비슷한 것을 성취했다고 적고 있었다. 하지만 프린키피아의 세 번째 판본에서는 라이프니츠에 대한 적개심이 드러나는 글로 바뀌었다. 당시에는 우선권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동일한 방법이 먼저 등장했다는 뉴튼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륙에서는 calculus가 처음으로 번영하고 확장되고 있었다.

둘 간의 논쟁은 어느새 대륙과 영국 사이의 싸움으로 판이 커지고 말았다. Wallis, Savilian Professor은 뉴튼을 지지했고, Johann Bernoulli는 라이프니츠를 지지했다.

18세기 초 첫 번째 십년 간 상황은 악화되었다. 라이프니츠는 De Quadratura를 리뷰하며 누튼의 화를 부추겼고, Essais de Theodicee(1710)에서는 명시적으로 뉴튼의 중력 이론을 비판했다. 반면 같은 해 John Keill은 왕립 학회의 철학회보에서 라이프니츠가 뉴튼의 이론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계속된 논쟁 끝에 라이프니츠는 왕립 학회에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고, 결국 17123월에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위원회는 당시 왕립 학회의 회장이었던 뉴튼에 의해 은밀히 주도되고 있었다. 위원회는 뉴튼을 첫 번째 창안자로 주장했다. 라이프니츠가 calculus를 자신의 발견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그동안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이 강력하게 시사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역사가들 덕분에 이러한 평가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동일한 결과에 독립적으로, 다른 길을 통해서 도달했던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논쟁은 라이프니츠가 죽은 뒤에도 잇달아 일어났다.

 


3. Jennifer M Rampling, “The Elizabethan mathematics of everything: John Dee's Mathematicall praeface’ to Euclid's Elements“, BSHM Bulletin, 26(3), (2011), pp. 135-146.

 

Rampling(2011)John Dee가 작성한 유클리드 원론 첫 번째 영역본 서문을 통해 그의 관심 분야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Dee1960년대까지 과학 서술에 있어서 주변적인 인물이었다. 과학혁명의 영웅으로 그려지기에는 성취한 것들이 너무 장황했고 겉보기에 모순되어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역사가들은 엘리자베스 시대 과학과의 복잡함과 상호연결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Henry Billingsley는 왜 Dee에게 서문을 맡겼을까? DeeBillingsley는 원론을 영역본으로 출간하는 데 있어서 대학 학자들의 비난을 걱정했다. (?) 그런 면에서 Dee는 서론을 작성하는 데 최적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는 캠브릿지 대학을 졸업했으며 파리에서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궁전과 연이 있었으며, 특히 엘리자베스 1세와 친분이 있었다. 또한 당시 인정받는 practitioner이자 수학 교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Dee는 원론 영역본의 변호자로서, 우선 대학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이후 상인과 장인에게도 실용적일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출간된 책의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레토릭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초자연적인 것, 자연적인 것, 제삼의 것으로 나누었다. 제삼의 것이란 바로 수학이었고, 앞의 둘 사이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Dee는 수학적인 것을 숫자와 양으로 나누었다. 숫자는 단위의 수학적인 합으로 정의되었고, 양은 선분이나 solid와 같이 길이, 넓이 또는 두께를 가진 수학적인 것으로 정의되었다. 단위와 다르게 양은 무한히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