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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1962/70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7장: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이론 변화의 선행 조건: 정상적인 전문적 퍼즐 풀이 활동의 붕괴가 위기의 핵심

1)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16세기 초에 유럽 천문학자들이 천문학의 패러다임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음.


2) 연소에 대한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 

1770년대에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되어 위기 발생. '기체화학의 융성 / 질량 관계에 대한 의문'은 제일 중요

첫째, 기체화학의 융성 : 

기체화학의 역사는 17세기 진공 펌프의 개발과 그것을 화학실험에서 사용하면서 시작. 18세기 동안 공기가 화학 반응에서의 활성성분임을 깨달음. 공기가 기체의 유일한 종류라는 믿음 고수. 1756년에 조지프 블랙이 고정된 공기가 언제나 보통 공기와는 구별된다고 보여줌.

블랙의 연구 이후, 캐번디시, 프리스틀리, 셸레에 의해 급진전. 기체의 시료를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전개. 기체화학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플로지스톤 이론을 통해서 설명할 가능성이 차츰 희박한 것으로 드러남. 일관성 있게 응용할 수가 없음. [위기의 첫 번째 징표: 하나의 이론과 관련해서 수정안이 무성해짐]

둘째, 질량 관계에 대한 의문 :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 17세기에 들어서 일부 연구자들은 연소된 금속은 대기로부터 어떤 성분을 흡수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음. 17세기 동안에 대부분의 화학자들에게 그러한 결론은 불필요한 것으로 보임. (화학 반응은 갖가지 성질들을 바꿀 수 있는데, 무게라고 못 바꾸겠는가? 무게는 항상 물질의 양의 척도로 취급되지 않음. 연소에 따르는 무게 증가는 별개의 현상으로 취급)

18세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초기 반응은 차츰 지탱하기가 어려워짐. (천칭 저울이 표준적 화학 기구로 쓰임, 기체화학의 발달로 인해 반응의 기체 생성물 보존하는 것이 가능, 뉴턴의 중력 이론에 점진적으로 동화)

그렇다고 이러한 결론들이 플로지스톤 이론의 포기를 초래하지는 않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정될 수 있었기 때문. [위기의 두 번째 징표: 패러다임이 주도한 연구가 차츰 전패러다임시대에 여러 학파들의 각축 아래에 수행되던 연구를 방불케 함]


3) 상대성 이론

공간의 상대론적 철학: 17세기 말, 자연철학자들은 절대 공간의 고전적 개념을 새롭게 수정해서 고수하는 것과 관련해서 뉴턴을 비판. 순전히 논리적인 것이었으며, 뉴턴 이론이 자연에 적용될 때에 야기한 어떤 문제에도 견해를 관련시키지 않음. 18세기 초엽 사라졌으며, 19세기 말 수십 년 동안 물리학의 실행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면서 비로소 부활.

1815년 이후 빛의 파동 이론의 수용: 빛이 뉴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역학적 에테르를 통해서 전파되는 파동이라면, 관츠겡 의해 에테르를 통한 흐름을 검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김. (광행차, 마이컬슨-몰리 실험) 성공적이지 못했으므로 이론학자들에게로 이전. 에테르 이론을 변형해서 갖가지 명료화된 수정안을 내놓음. (에테르 끌림) 다양한 수정 이론들 사이에서 모순이 있긴 했지만, 관련된 실험적 테크닉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순이 첨예하게 나타나지는 않음.

19세기 말의 20년 사이에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의 점진적 수용: 맥스웰은 자신의 전자기 이론이 뉴턴의 역학적 견해의 명료화와 양립된다고 믿음. 명료화시키는 작업은 그와 계승자들에게 하나의 도전. 뉴턴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파생되었던 패러다임을 향해 결국 위기 조성. 에테르에 대한 운동의 문제들에 집약.

그의 이론에 끌림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이 밝혀짐. 따라서 에테르 편류를 검출하기 위한 초기의 관찰들은 모두 변칙현상이 됨. 그러므로 1890년 이후 몇 해 동안 실험적, 이론적으로 에테르에 상대적인 움직임을 검출하고, 끌림을 맥스웰 이론에 도입하기 위해서 노력들이 행해짐. 실험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론적 시도는 어느정도 고무적이었으나(로런츠, 피츠제럴드) 결국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의 난립을 낳게 됨. (위기에 따르는 부수적 현상)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1905년에 출현했던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을 배경으로 한 것.


결과

1. 새로운 이론은 정상적 문제 풀이 활동에서 현저한 실패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출현했다.

2. 붕괴가 일어났던 문제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인식되어온 형태이다.

3.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해당 과학에 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시기 동안에 예측된 대로였다. 그리고 위기를 느끼지 못하던 상황에서 그 예상들은 무시되었다.

이론들이 충분히 관심을 끌지 못했던 한 가지 이유는 정상과학의 실행에서 논란이 된다고 인지된 지점과 접촉이 없었던 탓이다.

생산 활동에서처럼 과학에서도 도구를 새로 만드는 일도 그것을 요구하는 경우를 위해서만 예비되어 있는 일종의 사치이다. 위기의 중요성은 도구를 바꾸어야 할 적기에 도달했음을 가리키는 지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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