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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

Jan Golinski, Making Natural Knowledge: Interventions and Representations

사회구성주의자들이 실험을 구성하는 물질, 기구의 조작과 비언어적인 수단을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개괄하는 것이 이 장의 주제이다. 그들은 도구와 사물 사이의 관계와, 그것들이 서로 동화되고 구별되고 장소를 바꾸는 방식을 고려한다. 또한 그들은 시각적인 표상 체계를 과학적인 행태(scientific practice)의 일부로 이해한다. 물질과 시각적 표상 체계를 포함한 과학적 행태를 다루는 것은 "구성의 문제(the problem of construction)"에 답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Instruments and Objects

1. 실험 도구에 대한 다양한 관점

실험이 체계적으로 수행된 17세기 이래로, 실험과학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로 인해 수행되었다. 실험적 현상은 오직 실험기구의 구체적인 집합에서만 생산되고 재현되는데, 몇 몇의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다루기도 하였다. (이언 해킹 : 실험적 현상은 도구들의 복합체에 의해 "실재로 만들어 진다(made real)", 가스통 바슐라르 : "현상적 기술(phenomeno-technique)") 특히 바슐라르 같은 경우, 현상과 실험도구가 함께 생산되고 재현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는 실험 결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한편 사회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해석의 여지를 강조하는데, 바로 과학지식을 산출하는 국지적인 요소(specific local settings)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직 과학자들은 도구와 사물을 구별해서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도구와 사물의 구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험기구는 처음에는 탐구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 사용하기 적절한 도구로 여겨지면, 복합체 속으로 편입된다. 하지만 언제나 대상과 도구의 구별은 애매해질 수 있다.


2. 물질 문화의 변화

실험도구의 가치가 인정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우선 Shapin과 Schaffer의 보일-홉스 논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홉스는 실험 장비가 자연철학적 지식을 생산하는 적합한 수단이 아니라고 말하며 보일과 맞섰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일의 공기 펌프는 받아들여졌는데, Shapin과 Schaffer는 그 과정과 더불어 공기 압력과 관련된 지식을 실험이 이루어진 원래 장소를 벗어난 곳까지 전달하기 위해 그 펌프가 사용된 방식까지 보여준다. 암묵지까지 이동시켜야 하므로 현상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험도구 자체의 물성(materiality)을 고려한다면, 올바른 환경에 놓이고 인간이 잘 다뤘을 때 실험은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 그리고 Helden는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놓고 벌어진 논쟁을 연구했다. 그에 따르면, 갈릴레오는 반대자들을 직접 찾아가 그의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그것의 복제본을 잠재적인 후원자들에게 보내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사학 연구는 물질 문화(material culture)―이 문화 속에서 새로운 실험철학이 근대 초에 등장했다―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물질 문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사회적인 배경이 필요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도구를 바라보았던 후원자, 기예적 활동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려고 했던 자연철학자, 새로운 시장에 부응해서 개선된 기술을 가진 장인. 17세기부터 실험과학자들과 도구의 장인들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 관계를 그 기원에서부터 재구성하는 것은 새로운 기구가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사용되기 위한 제반 조건을 제공해준다. 18세기에 그들 사이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진다. 어떤 분야에서는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특수하게 만들어진 장비가 필요하기도 했다. 또한 실험과학을 대중의 영역으로 옮겨놓는 데 그들 사이의 관계가 큰 힘을 발휘했다. 19세기, 특히 2차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시기에는 물질문화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제작 제작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맥스웰은 산업 공정에 기반하며 과학을 모델화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훈련을 거쳐 연구를 하는 방식이 도입됨으로써 과학 활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정밀 측정이 훈련이 필요한 영역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톰슨이 이와 관련된 주된 예이다. 그에 의해서 실험기구의 사용과 정밀 측정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졌는데, 특히 그가 글라스고에 있는 연구소에서 전기 전신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할 때 더욱 그랬다. 또한 그는 그의 주문에 맞게 기구를 제작하고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기술자와 제휴를 맺기도 했다. 이후에 맥스웰이 운영하던 캐븐디쉬 연구소는 이 제휴 방식을 받아들여 실험 도구를 판매하는 회사로서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는 캐븐디쉬 연구소가 단순한 공장이 되는 것에 저항하며 전기 단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은 큰 가치있는 일이며 전자기학에 대한 수학적 이론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맥스웰의 이러한 성취는 캠브릿지 대학의 생리학 실험연구소를 설립한 포스터와 비교된다. 그의 연구소에서 훈련받는 연구자들은 정밀 측정 대신에 각종 동물들의 해부된 조직의 변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생리학적 변화는 독일에서부터 들여온 카이모그래프를 사용하여 기록하였다. 


3. 무엇이 국지적인가?

이처럼, "현상적 기술"은 국지적인 문화에 위치해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 구성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구체적인 국지적 요소가 무엇이며, 장비가 수반하는 것은 무엇인지(장비가 그것을 사용하는 이를 규제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인가), 실험 도구를 각 환경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등.

현대 과학은 과거의 과학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규모에서 이루어지고 굉장히 복잡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한 분야를 연구할 때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이 함께 작업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Clarke와 Fujimura는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 지식의 내용과 그 생산의 조건에 대한 생태학"을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다. 또한 역사가들은 실험 체계의 역사적인 발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개별적인 요소들이 점진적으로 안정화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black-boxing). 이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은 이것이 단순히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장비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과학적 발견에 대한 동의는 동시에 도구에 대한 동의이기도 한 것이다. 살험자들은 기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모델과 탐구 중인 현상에 대한 모델 사이에서 안정된 위치를 확보한다. 이러한 안정화는 초기에는 국지적이며 일시적이고, 현상의 발견과 도구의 블랙박스화 모두를 형성한다. 따라서 현대 실험체계의 발전을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은 각 요소가 어떻게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서 블랙박스화되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험프리 데이비가 볼타 전지(voltaic pile)를 화학물 분석의 도구로 쓴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데이비는 단순히 실험적인 조작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수사학적인 수단을 사용해서 블랙박스로 만들었다. 


4. 실험체계의 발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복잡한 실험체계의 장기간의 발전을 설명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난점이 있다. 각 도구들이 독립적으로 블랙박스화되고 연속적으로 축적된다는 관점은 휘그적 역사관에 빠질 염려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까? 

1) Galison은 도구 사용의 발전이 3가지 시간 규모에서 전개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역사가 현대 물리의 실험체계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시간 규모를 개괄하고 그것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다른 접근법이 Rheinberger의 생물학 발전 연구에서 제시된다. 그는 실험체계가 일시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차별적 재현(differential reproduction)"이 그 특징인데, 이는 실험이 재현될 때마다 새로운 생산물이 산출된다는 개념이다. 그는 원심분리기를 그 예로 들고 있다.

3) Kohler는 그의 초파리 연구에서 더 상세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초파리와 사람의 공생과 그들이 사는 실험실의 생태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광대파리는 인공물이면서 생물학적 유기체이다. 즉 과학자들의 목적에 맞게 가공되었다는 점에서 인공물이고,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그는 이러한 살아있는 개체도 실험체계의 핵심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The Work of Representation : 그림/사진을 중심으로

1. 과학에서의 시각적인 표상체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가?

과학의 행태(scientific practice)을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인 이미지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선 그 예로 그래프와 사진을 꼽을 수 있겠다. 또한 심지어 과학에서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기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다양한 도식적인 표상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표도 과학에서의 시각적인 표현의 예이다. 시각적 표상(visual representation)은 다양한 범주 아래에서 연구될 수 있다. 과학적인 상들(scientific images)이 사용되는 환경(setting). 그것을 이용해서 설득하려는 목적과, 독자에게 그 상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즉 그 기능(function). 그리고 환경과 기능과 연관이 있는, 시각적 표상을 위한 다양한 기술(technologies). 한데, 라투르는 이 모든 범주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과학적인 상의 역할은 그것들의 움직임에 집중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그에 의하면, 모든 상들은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유동성(immutable mobiles)"라는 특성을 공유한다. 변화하지 않은 채로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곳에서 발원한 현상은 그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그럼으로써 설득력을 갖는다.

라투르의 이러한 관점은 시각적인 표상체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유용하다. 하지만 시각적인 상을 제공하는 다양한 기술들 간의 개별적인 특징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기술에 따라 그것이 제공하는 상과 상이 반영하는 사물 자체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또한 같은 수단에 대해서 다른 관례(convention)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객관성" 개념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구성주의자들은 표상 기술이 새롭게 개발된 시점을 연구함으로써 이러한 여러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는 여러 기술들이 서로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데, 시각적인 상을 만드는 혼종적인 방법들의 중첩은 현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과학의 특징이다. 역사적인 접근법이 이러한 혼종적인 복잡함을 해결할 수 있다. 


2. 과학에서 사용된 시각적 상의 기원 : 그림

인쇄 기술의 발달과 원근법의 발명이 이미 확립된 17세기에서 과학에서 사용되는 시각적 상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저자가 드는 예는 다음과 같이 총 세 가지이다. 

1) 보일의 공기 펌프 (Shapin) : 보일이 공기 펌프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한 관례(convention)는 그의 수사술과 평행선 상에 있다. 펌프는 어떠한 구체적인 상황에 있는 것처럼 그려졌고, 또한 3차원으로 굉장히 상세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섀핀은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그것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가정과 기술적인 관례가 그 과정을 반영하는 방식을 고려하지 않았다. 한편, 저자는 보일의 예가 이 문제를 고려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왜 그런 것일까?

2) 17세기 초 천문학 (Winkler, Helden) : 우선 17세기 초 망원경의 신빙성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갈릴레오이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 신빙성을 입증하는 상당 부분은 시각적인 요소보다는 언어적인 요소와 더 연관성이 높았다. 그들은 1640년대에 들어서야 '자연주의적 표상 기술(techniques of naturalistic representation)'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벨리우스는 그의 저작에서 행성과 태양, 달 등이 굉장히 상세하게 그려진 다양한 삽화를 실었다. 또한 그의 망원경과 렌즈를 깎는 기구를 그려 넣기도 하면서, 보일과 같이 "시각적인 증언(visual witnessing)"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3) 후크의 망원경 그림 (Dennis, Harwood) : 후크가 사용한 시각적인 상에 대해서 세 가지 정도의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그는 그가 그린 종을 준비하는 방식과 실험을 조작하는 방식에 대한 굉장히 상세한 주석을 실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그는 독자에게 그 자신이 현상을 참되게 전달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둘째, 익숙한 사물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또한 익숙한 비유로 설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셋째,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 그림의 복사본에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즉, 그는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독자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했던 것이다.


3. 표상의 해석학, 객관성의 개념

한편 Dennis는 후크의 집필 방식의 기저에 "표상의 해석학(hermeneutic of representation)"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현미경으로 인공물과 자연물을 관찰한 결과, 그 둘의 차이가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욱 두드러졌다. 후크는 이 현상을 인간보다 무한히 월등한 신이 그의 메시지를 자연물에 새겨 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서 그는 다른 방식보다 자연물 자체를 관찰하는 방식을 통해서 신의 말씀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Dennis는 후크의 표상의 해석학에 대한 이러한 설명을 가지고 근대 초에 이루어진 표상 체계의 변화에 대해 더 넓은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미셸 푸코는 르네상스기의 에피스테메와 17세기 중반의 고전적인 에피스테메를 구분하고, 둘 사이의 변화에 대해 논했다. 전자는 "상사성(similitude)"의 관계에 의해 지배되었다. 말 자체가 사물과 일치한다는 생각이다. 후자는 "재현(representation)"에 의해 지배되었다. 사물과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재현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각적인 상은 사물과 "유사성(resemblance)" 관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담론과 분리된다. Lynch와 Woolgar는 이러한 관점이 현대 과학의 표상체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은 끝없는 "유사성"을 활용해서 상 위에 상을 계속해서 중첩하고, 마지막에 얻은 상은 원본을 완벽히 재현한 카피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 복잡하다. 원본을 구성하고 있느 것들과, 어떻게 그것을 적절하게 묘사하는지에 대한 개념은 기술마다 다르다. 또한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이 그들이 얻어내는 상을 더 적확하게 만들기 위해 본인들의 역할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사실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Daston과 Galison의 17세기 이래로 사용된 인쇄물의 시각적인 상에 대한 연구가 이를 잘 드러낸다. 그들은 상이 구현하는 "객관성(objectivity)"에 대한 개념과 연관 지어서 이 문제에 천착한다. 17, 18세기에는 개별적인 종의 특질을 제거해야 상이 자연과 그대로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인간의 해부체를 그리려 했던 사람들은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었다. "이상적인 형태(ideal form)"와 "특징적 형태(characteristic form)"이다. 알비누스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했지만, 후자를 전자에 종속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반해 헌터는 특정한 종의 개별적인 특징들은 자연 그대로 그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자연성(naturalism)이 개입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조작한 후에야 관련된 특징들이 보일 수 있고 "진리의 표시(the mark of truth)"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실재를 반영하는 사진?

사진 기술의 혁신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진리의 표시(흔적)"으로 확실하게 인정된 뒤였다. 따라서 사진 기술이 시각적인 표상체계에 놀랄 정도로 잘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사진 기술 자체가 아니라, 표상을 다루는 행태에 내재한 객관성의 정도에 대한 개념이다. 사진의 중요한 특징은 실재를 반영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개입과 무관하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사진 기술이 발명된 초기에 바로 이러한 관념이 잘 드러난다. 심지어 19세기에 사진 기술은 객관성의 기계적인 이상을 목표로 하는 단 하나의 자동 표상체계(automatic representation) 기술로 여겨졌다. Rothermel의 태양 사진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맥락을 잘 보여준다. (De la Rue, Airy) 그중에서도 특히 태양 사진이 어떤 현상을 잘 담지 못했을 때의 Airy의 반응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한데, 사진은 앞서 말했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유동성(immutable mobiles)"이라는 특징을 궁극적으로 가지고 있는 매체인 것일까? 사회 구성주의자들은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세 가지의 주안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 사진은 다양한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당연히 나온 시각적인 상이 아니다. 즉,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데 있어서 특정 맥락에 의존하고, 다양한 분야에 응용하는 데 아직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둘째, 사진에 의문을 품게끔 할만한 새로운 현상이 발견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진이 전하는 메세지를 해석하는 다양한 양상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