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랜 시간동안 사랑이라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 노력은 보편적이다. 사랑을 주제로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건, 각양각색의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일반 대중들이건, 그들이 타인과 만나 교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 필연적으로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체로 그들이 내놓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단순하다. 배려와 존중,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타인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을 정도의 자기애 또는 자기의존. 한 번이라도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대답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견 타당해보인다. 사랑이란 것이 일시적인 감정 그 자체가 아닌 이상, 지속적인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속적인 노력은 배려와 존중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또한 자기의존이 부족하다면 배려와 존중의 태도를 가지기도 힘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랑에 울고 웃는 것일까. 이토록 답이 쉽고 단순하다면, 그들의 삶은 항상 기쁨으로 넘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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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 영화도 그런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고는 결혼 5년차에 권태기에 접어들고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낀다. 그리곤 남편에게 이별을 선언한 후 그 남자와 함께 떠난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대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문제, 즉 타인에 대한 의존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의존이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루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영화에서는 마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루가 마고와 이별한 후 무엇을 느꼈는지 정확히(아마도 나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무언가를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 가지 일만을 꾸준히 만족하며 할 수 있고, 하루하루 똑같이 살아갈 수 있음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 하는 마고를 이해하지 못 한다. 나는 그 이유를 그가 그의 주변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마고가 떠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이미 마고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며, 그는 그러한 당연함 위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그가 마고와 이별한 후 정말로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그의 주변에 있는 어떠한 것도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것들을 지속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핵심적으로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타인이 없어도 홀로 설 수있는 자립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 또한 결혼이란, 사랑에 수반되는 것이라면, 다르게 말하면 결혼이 사랑이라는 태도 내지 실천을 기반으로 해야만 올바르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결혼을 하면 막연히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결혼이란, 일종의 '보충'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의 빈 곳을 채워서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원래는 없어도 되지만 추가함으로써 원래의 것을 변형시켜 더욱 다채롭고 새롭게 만든다는 점에서의 '보충'. 그리고 '보충'이란, 바로 실천에 뒤따르는 것이므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함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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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를 인식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우리의 태도가 되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像)'을 단순히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에는 지속적으로 '공감'하는 과정 속에서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일종의 '훈련'을 통해서라는 말이다. 다양한 매체를 접하며 그 매체가 전하는 메세지에 공감하고 계속 되씹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공감 하나하나가 모여 견고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것은 곧 실천과 행동을 유발할 것이다.
나에게는 이 영화가 이러한 점에 있어서, 즉 반추하며 돌이켜볼 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 있어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처음에는 마고의 심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감정의 워낙 미묘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일까? 심지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어렴풋하게만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다양한 리뷰를 보면서, 어머니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고라는 인물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복잡한 감정선을 지닌 인물은 한편으로는 영화에 대한 몰입과 공감에 장애가 될 수 있지만, '공감에 대한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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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시를 오랜만에 찾아 보았다. 나는 나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홀로 있을 때보다 더욱 다채롭고 풍부한 '보충'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시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의 끝을 맺는다.
나와 함께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고독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오리아 마운틴 드러머, 초대,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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