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사/서양과학사

[W2] 우주의 음악과 하모니: Pesic 독서 노트

과학사통론1 - 2주차 독서 노트 (2018. 3. 9)

우주의 음악과 하모니

조장현

 

Peter Pesic, Music and the Making of Modern Science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2014), pp. 1-131.




Chapter 1. Music and the Origins of Ancient Science

Pesic(2014)은 음악과 현대과학의 형성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음악이 현대과학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심적인 요소였다는 이유에서다.

1장에서 Pesic은 피타고라스부터 시작해 필롤라오스, 플라톤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보에티우스까지 음악과 수(특히 합리적인 수rational number와 비합리적인 수irrational number)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변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우선 피타고라스는 신화로 둘러싸인 인물이었다고 기술하고, 바로 그의 학파 소속인 필롤라우스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간다. 필롤라우스는 모든 알려진 것은 숫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수와 세계cosmos를 다루는 중심에 음악을 위치시킨다. 그는 조화harmonia'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는데, harmonia는 옥타브octave를 의미하기도 한다. 세계 자체와 세계 내에 있는 사물들은 한정자limiter비한정자unlimited가 조화를 이룰harmonized 때 질서 지워지고 인식 가능해진다. 여기서 Pesic은 필롤라우스가 한정자는 홀수를, 비한정자는 짝수를 의미했다고 보고 있는데, 비록 피타고라스학파가 그것들을 각각 같은 부류에 속했다고 생각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세계에 대한 필롤라우스의 일반론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대다수의 피타고라스학파에 대한 정보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편 니코마쿠스나 보에티우스의 신화 속에서 피타고라스는 우연히 착안한 이론(조화로운 음과 수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행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보에티우스가 피타고라스의 행동을 묘사할 때 처음에는 ‘inquirebat시험하다라는 용어를 썼다가 나중에는 'experientia시험에서 살아남은'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진위가 어찌되었건 간에 피타고라스는 그 조화로운concordant 음들의 수적인 관계가 1:2:3:4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보에티우스는 이를 6:8:9:12로 표현하여 관계를 더 명확히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한 옥타브 사이의 간격 중 8:9의 비를 가진 두 음은 전혀 조화롭지 않다discordant는 것이었다. 니코마쿠스는 그 비를 본질적인essential인 것이라 생각한 반면, 보에티우스는 그것을 거부했다. 여기서 부조화dissonance를 둘러싼 문제가 발생한다. 대체 어떤 것을 부조화로 간주해야 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플라톤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영혼과 세계는 모두 음악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은 국가에서도 고수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음악을 중요한 교육 과목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Pesic은 플라톤이 제대로 된 철학을 하기 위한 중요한 네 교육 과목mathemata을 천문학, 기하학, 산수론, 음악이라고 생각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국가에서 플라톤은 음악 대신 입체기하학을 포함하여 네 과목을 구성하고 있다. 그가 출처를 밝히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가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다. 아마 그는 플라톤이 시가(mousike: 음악)와 체육gymnastike을 포함한 조기교육과 철학을 위한 예비 교육과목mathemata을 헷갈리고 있는 것 같다.

mathemata 중 하나인 산수론arithmetica는 두 가지 근본적인 범주의 구분에 기초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다수multitude의 범주로, 자연수(arithmos: )로서 셀 수 있는countable 것들을 의미한다. 산수론은 수들이 비logos로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또한 다루고 있다. Pesiclogos이야기’, ‘’, ‘추론등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수를 센다는 것이 설명이나 추론의 대상이 된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magnitude'으로서, 이는 기하학이 다루는 대상이다. 플라톤은 양과 수가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기하학적 선분은 수로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선분의 길이는 자연수의 비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인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비를 비합리적인irrational, alogon' 것으로 불렀다.

한편 Pesic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1을 수가 아닌 모든 수들의 근원이 되는 단일체monad, monos라고 생각했고, 일부의 피타고라스학파 일원은 2 또한 수가 아니라 하나와 다수를 매개하는 이원dyad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플라톤이 이 생각을 이어 받아 이원을 하나와 관계 맺어져서 세계에 다수를 있게 하는 비한정자로 여겼고, 더 나아가 그의 좋음의 이데아Idea of the Good와 하나 자체를 같은 것으로 여겼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Pesic의 견해는 플라톤의 수론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이지만, 사실 최근 들어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견해의 출처는 그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이며, 실제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플라톤의 대화편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당시의 그리스 수학자들, 적어도 플라톤이 비합리적인 수를 무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플라톤에게 합리적인 수는 비합리적인 수와 대비되며 그의 인식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과 관련해서 Pesic의 논의는 모호하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이 그의 글이 함의하는 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설명했듯이 셀 수 있는 수, 즉 합리적인 수는 logos와 연관되어 있으며 플라톤이 그의 인식론에서 logos(더 나아가서 지성nous)를 강조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Pesic이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합리적인 수는 비합리적인 수와 절대로 같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합리적인 수는 logos를 결여한, 즉 설명할 수조차 없는 대상이고, 그러므로 (진리)’을 인식하는 데 전혀 관련이 없는 대상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라는 것은 당대의 철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합리적인 수의 수용과 비합리적인 수의 배제는 음악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하학적인 분할geometrical division은 부조화한 두 음 간격과 일치하고, 산술적인 분할arithmetic division은 조화한 두 음 간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선율적 간격melodic interval을 나눌 때에도 똑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문제는 천문학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옥타브 간격을 9:8의 비율을 가진 음들로 채울 경우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데, 모자란 간격을 채우기 위해 어떤 종류의 음이 필요하다. 그 간격을 정확히 둘로 나누면 비합리적인 수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음악가들은 산술적인 비율과 기하학적인 비율을 조합한 비율인 조화평균harmonic mean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의 음악분과는 천문학처럼 천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산술적인 비율과 그것들을 묘사하기 위한 기하학적 비율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플라톤에 의해 그의 인식론과 결합되어 결국 음악과 천문학은 감각적 영역과 지성적 영역을 매개하는 교과 중 하나로 된다.

플라톤의 이러한 해석은 후대에 아리스톡세노스와 보에티우스 등에 의해 논란거리가 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피타고라스(또는 플라톤) 편에 서 있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저서인 조화Harmonics는 관찰된 데이터와 이론을 훌륭하게 종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저작은 17세기 초에나 다시 서유럽으로 유입되어 큰 영향을 미친다. 조화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음악적인 내용을 천문학적인 주제와 결합시켰는데, 특히 행성들의 적절한 움직임proper motion을 음악 선법musical mode의 변화와 연관시켰다. 이러한 연관은 나중에 태양중심설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된다.

한편 우리는 플라톤이 음악을 주요 과목으로 꼽은 뒤 굉장히 오랜 후까지 심지어 뉴턴 시기까지 이어졌음을 계속 기억할 필요가 있다.

 

 

Chapter 3. Moving the Immovable

3장에서 Pesic은 지구가 움직일 수 있는지와 음악의 선법mode이 바뀔 수 있는지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음악의 선법이 바뀐다는 것은 천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저자가 Vincenzo Galilei는 음악을 고려함으로써 태양중심설을 선호하게 되었고, 더 일반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을 중심으로 한 논쟁에 하모니가 주된 역할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다.

당시 천구에 적절한 음을 할당하는 문제는 미결상태로 남아 있었다(Tinctoris, Giorgio, Gaffurius ). 하지만 대체로 다들 동의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태양에 첫 번째 선법first of primal mode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Henrich Glarean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배치되는 두 모델을 나란히 제시하면서도 태양에는 primality를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선법의 중심modal center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보수주의자로서 전통적인 관습과 격언의 지혜에 대한 생각 때문에 선법 변환(뤼디안에서 이오니안으로, 도리안에서 프리기안으로)을 거부했다. 하지만 Josquin des Prez는 이오니안 선법과 아이올리안 선법을 매개체로 도리안 선법을 프리기아 선법으로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바꿀 수 있었다. Pesic, 당시 사람들이 선법과 우주론을 연관 지어 생각했을 것이므로 Josquin의 선법 변환은 그 사람들에게 거대한 우주의 이동huge cosmic displacement을 시사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변화는 자연적인 변화와 강제적인 변화로 나뉘는데, 강제적인 변화는 반드시 어떠한 힘에 의해 수반된다. 따라서 도리안 선법에서 프리기안 선법으로 변환될 때에도 외부의 예술적인 힘external artistic force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Josquin의 업적은 자연적인 것 (그리고 이교도적인 것)을 넘어 신의 은총의 더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Pesic은 말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을 주창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움직일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하모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학사 시절에 de Muris의 저작을 통해 음악을 공부했을 것이라고 Pesic은 추측하고 있다. 파리와는 달리 상황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그리고 케플러)는 오래된 관습적인 수학-음악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Pesic15세기에 코페르니쿠스가 학사 시절을 보낸 학교 Krakow에서는 장 뷔리당과 오렘의 저서가 연구되고 있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에 대한 연구를 접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일단 코페르니쿠스는 Commentariolus에서 같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천문학을 무용술과 음악을 결합시킨다. 그는 책에서 해가 뜨고 지는 건 볼 수 있지만 지구는 그럴 수 없다는 반박을 언급한 후 태양중심이론이 행성 천구들planetary spheres의 질서와 거리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양을 중심에 배치하면 우주의 놀라운 대칭성symmetria과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의 Almagest에서 하모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와 비교하면 꽤 흥미로운 점이다.) symmetria에는 기하학적 공약가능성의 의미도 가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것이 각 천구의 크기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척도로 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에 대한 당대 학자들의 반응에서도 simmetriasymphonia와 같은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반응은 음악 저술에서 등장한다. Vincenzo GalileiGirolamo Mei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습득한 새로운 사실들을 그의 저서 Dialogo에 담았다.

Vincenzo는 누구에게서 천문학적인 관심을 물려받았을까? Pesic은 그가 그의 선생 Zarlino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Zarlino는 음정의 대칭성, 그것과 우주론의 일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그가 당시 천문학의 이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명확한 증거는 그가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Zarlino는 코페르니쿠스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PesicVincenzo가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PesicGalileo Galilei가 그의 아버지 Vincenzo에게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대한 생각을 이어 받았을 수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반대 영향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는데, 왜냐하면 갈릴레오가 어떻게 처음으로 태양중심설을 배웠는지에 대한 현존하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초기 필기노트(1590? 1584?)를 보면 그가 Clavius의 저작을 복사하며 아리스타르쿠스와 코페르니쿠스를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견해를 어느 정도로 수용했는지는 알기 힘든 문제이다.

그 사상적인 경로는 어찌되었건 간에, Vincenzo는 태양중심설에 대한 음악적인 해석을 했다. 또한 그의 아들 갈릴레오는 태양중심설을 언급할 때, 그리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설득할 때 종종 음악적인 용어, 범주를 사용했다.

 

Chapter 4. Hearing the Irrational

비합리적인 수irrational number는 특히 음악 분과에서 유독 문젯거리였다. 이것은 수학과 음악을 함께 논했던 당대의 세 학자들(Michael Stifel, Girolamo Cardano, Nicola Vicentino)의 의견이 각기 달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음악에 대한 접근법이 달랐던 것이다.

16세기 수학자들은 수와 양number and magnitude에 대한 고대의 관념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차별화를 위해 분투했다. Rober Record는 수에 무리수를 포함함으로써 수 개념의 외연을 넓혔다. 또한 그는 실용적인 예제를 담은 저서를 출간했다. 이러한 실용적이기도 하고 이론적이기도 한 수학적 이해는 Francois Viete의 상징적, 혁명적 작업의 동기가 되었다. 그는 정수와 무리수를 포함한 미지수를 알파벳으로 표현함으로써 서로 다른 수 개념을 연결시켰다.

그런데 수의 본성에 대한 이런 문제는 일찍이 음악 분과에서 나타난 것이다. 가장 먼저 mathematical hybrids를 위한 용어로 무리수를 언급한 사람은 Michael Stifel이었다. 그의 방법은 Recorde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처음엔 고대의 정의에 따라 basic interval을 자연수 비로 다루었다. 그러나 한 옥타브를 자연수 개의 온음으로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온음을 반으로 나누어야 했다. 하지만 보에티우스가 지적했듯이, 정확히 반으로 나누었을 때는 필연적으로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기하평균을 포함해야 했다. 따라서 보에티우스는 온음을 똑같지 않게 major semitoneminor semitone으로 나눠서 문제를 회피했다. 그리고 이 두 음의 작은 차이를 comma라고 불렀다.

반면 Stifel은 이 비율들(온음을 반으로 나눈 비율)을 이미 현재 음악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학적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온음을 산술적으로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유클리드와 오렘이 정확히 그었던 rationalirrational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리수의 본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태도를 바꿨다. 무리수가 함의하고 있던 무한성infinitude' 때문이었다. 비록 그가 이렇게 무리수의 수로서의 지위를 부정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 논의에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CardanoDe musica에서 장식음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특히 diesis 간격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것에 의해 diesissemitone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계산이 irrational root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rational approximation이란 방법을 도입하여 irrational 개념에 접근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단순히 미봉책이나 근사라고 생각하니 않고 정확한correct"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는 주로 음악에 대해 고려할 때 rational intervalirrational interval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했다. diesis에 대한 rational approximations 중에서 수적인 값에 가까운가를 고려하지 않고 음악적으로 판단하여 하나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두 방식으로 얻은 값을 모두 참된true"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golden rule을 이용해 closest approximation을 얻는 방법을 (아마도 다른 저작에서) 제시했다. 이 결과가 참된 값true value와 비교했을 때 그 차이를 전혀 지각할 수 없고, 따라서 이것은 보편적인 추론이며 다른 법칙은 없다는 Cardano의 주장에서 Pesic은 다음과 같은 함의를 이끌어낸다. Cardano는 기하학적으로 접근했을 때와 산술적으로 접근했을 때 모두 똑같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그 값들이 옳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음악은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제시한 단 하나의 예시였다. 이렇게, 산술학에서 대수학으로 발전하는 길목에도 음악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Nicola Vicentinoirrational quantity를 수로 다룬 기반은 선율 스타일과 musical pracitce의 문제와 더 관련이 있었다.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오직 diatonic genus에 대해서만 논평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다른 종류들, 특히 enharmonic genus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Vincentinoenharmonic genus가 잊혔던 고대 음악의 부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은 하나의 사건(with Lusitano)으로부터 널리 퍼져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문제는 당시 음악에서 고대 음악의 위상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우주의 성격과 온전함the character and integrity of the cosmos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

당시 16세기에는 온음을 나누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학자들은 각기 다른 semitone의 정의를 제시했다. 그런데 새로운 방법이 고대 원천에서부터 찾아진 것이다. 특히 아리스톡세노스는 감각을 강조함으로써 음정이 반드시 합리적일rational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을 수 있다. 또한 임의의 음악적인 양arbitrary musical quantity를 그 자체로 단위로 간주함으로써 문제에 한 발 더 다가갔다. 그는 적어도 모든 음에 내재된 순수한 비율에 대한 공상을 버리고 practical "commensurability"를 제시한 것이다.

Vincentino는 아리스톡세노스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그가 경험을 강조한 것은 음악적인 practicerationality에 대한 오래된 논의를 능가하는 새로운 시금석으로 등극되었음을 의미한다. 매우 작은 음정을 똑같은 분할하려는 과정에서 기하학과 산술학 차이의 한계가 극복되었던 것이다. Vincentino의 논의는 고유의 이중성inherent duality을 내포하고 있다. diesis가 가장 작은 단위로서 기능하기는 하지만 irrational하므로 사실상 비율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그 존재를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이다. Vincentino에게 음악은 산술학과 기하학이 만나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세 인물을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음악에 대한 실용적, 이론적인 고려가 새로운 수학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Chapter 6. Descartes's Musical Apprenticeship

그동안 데카르트의 새로운 철학new philosophy’의 수학적, 형이상학적, 자연철학적 요소들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저작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데카르트의 논의는 그의 새로운 물리학연속적 유체fluid continuum라는 그의 생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이 연관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새로운 자연철학적인 생각을 통해 음악을 신성한 힘이 아닌 자연현상으로 보았다는 견해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Pesic은 거꾸로 데카르트의 musical essay가 새로운 자연철학적 생각의 형성에 기여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데카르트는 수학과 자연철학을 결합하는 가장 적합한 예로 음악이론을 꼽았다. 또한 그는 하늘의 음악이 아닌 지상의 음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음악을 순수하게 수적으로가 아닌 물리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한편 그는 당시의 musical practice에도 친숙했는데, 이것은 메르센과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어떠한 순수한 수학적인 논의는 경험에 의존했으며, 이 경험은 심지어 음악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음악적인 경험을 통해 등장한 진동하는 공기를 설명하는 문제는 point bodies에서 연속적 매질continuous media로 역학을 일반화 시키는 작업의 기초를 형성했다. 특히 진공이 이 문제에 대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음악적-물리학적 문제를 다루는 와중에 진공을 부정하게 된다. 그는 자칫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우주론을 제시하는 안전한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소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귀를 때리는 공기의 진동으로 이해된 소리는 데카르트가 빛과 우주를, 무한하게 나누어지는 연속적 유체fluid continuum로 이해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