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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서양과학사

[W2] 우주의 음악과 하모니: 발제

과학사통론1 - 2주차 발제 (2018. 3. 9)

우주의 음악과 하모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조장현

 

Peter Pesic, Music and the Making of Modern Science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2014), Chapters 2, 5.



 

Chapter 2. The Dream of Oresme

 

2장에서 Pesic은 음악이 14세기에 천문학, 산술학, 기하학 사이를 매개하는 본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오렘Oresme을 중심으로 밝히고 있다.

보에티우스Boethius(480~524)의 음악에 대한 논고가 소실되었다가 9세기에 다시 등장하여 그리스의 음악에 대한 중요한 원천으로 활용되면서, 음악 과학musical science은 자연철학의 다른 분과가 사라졌을 때도 그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 르네상스기(12세기)를 지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이 번역된 후 천문학, 물리학, 음악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함께 발전했다.

그 발전 과정에서 14세기의 자연철학자 니콜 오렘Nicole Oresme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천체의 운동, 즉 속력이 공약가능한지commensurable’에 대한 문제를 탐구했는데, 여기서 산술학과 기하학의 차이가 음악적으로, 수학적으로, 천문학적인 형태로 뚜렷하게 등장한다. 우선 그는 유클리드의 명제를 활용해서 서로 다른 두 천구의 반지름은 서로 공약불가능할incommensurable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이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만약 천구들의 속력이 공약불가능하다면 두 천구의 초기 위치는 절대로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한다(p.22). 이 결과에 따르면 우주cosmos는 절대로 초기의 배치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오렘은 이 결론을 취해서 '플라톤년Great year'과 같은 순환주기는 없다고 단언하고 이 결과를 점성술에 대한 반박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특히 Le Livre du ciel et du monde (1377) 에서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다. 이 지점은 음악이 그의 논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주장의 근거로 운동의 상대성과 천구의 날마다의diurnal 주기적인 회전 운동의 모순을 지적했으며 심지어 성서해석의 문제까지 언급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주장·근거가 환기diversion나 지적 연습intellectual exercise”으로서, 논쟁을 통해 신앙에 대해 논란하려는 이들을 반박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그의 진짜 의도를 추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Pesic은 그것이 논란이 될 사안임을 그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 그가 리지외Lisieux의 주교였다는 점, 성서해석의 비일관성 등을 근거로 오렘의 이러한 언명이 교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레토릭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오렘 본인의 의도가 사람들이 기독교적 교리doctrine를 믿을 때보다 더 태양중심설을 쉽게 믿는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었을 것이라고 Pesic은 추측한다(p. 25). 그러나 사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Oresme의 주장이 실제로 지구가 공전한다는 것 인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록 Pesic이 피타고라스학파의 태양중심설에 대한 오렘의 언급을 전해주며 그를 다양한 근거로 태양중심설을 뒷받침한 인물로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언급에 대한 출처가 불분명할뿐더러 오렘의 주장을 지구의 공전이 아닌 지구의 자전으로 받아들이는 역사가도 있다. 그리고 오렘이 표명한 입장을 방향전환으로 해석하지 않고 진지한 것으로 보아도 충분히 개연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 당시 그의 목적은 이성적 논증에 의해 신앙을 모독하는 자들에게 교훈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일이었다. 지구의 부동성을 가정하든 운동성을 가정하든 천체현상에 대한 설명이 모두 가능하므로, 이성적 논증을 통해 제시한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는 성서에 나와 있는 대로 지구가 정지해 있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수용했다.

Pesic은 오렘의 실제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그의 천문학 속에 담긴 음악과 관련된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맥락을 통해 우리가 이끌어낼 수 있는 함의는 무엇일까?) 음악에 관한 그의 생각은 천구의 날마다의diurnal 운동과 지구중심설 반박에 대한 추가적인, 또는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천상의 하모니celestial harmony는 들을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음악적 근본 비율primal musical proportions'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등, 여러 탐구를 통해 수학의 초감각적인 세계와 감각 가능한 천문학적 증거 사이를 음악이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구중심 우주론과 관련해서, 당시엔 다양한 천구에 어떤 음 높이musical pitch가 할당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미결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비록 그 음들은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상대적인 음 높이에 대한 음악 용어를 그 문제에 적용했다. Pesic은 이 지점에서 그가 가장 바깥쪽 천구는 고음을 낼 것이라고 추측하는 식으로, 천문학의 미결된 문제들에 대해 음악적으로 고려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 문제가 천문학 자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식으로 제기된 게 아닌데, 오렘이 오직 천문학적인 문제를 음악적으로 접근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오렘은 이러한 접근을 천체의 운동이 공약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에 적용시킨다. 이 지점 또한 그가 오직 천문학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천문학적인 문제를 음악을 사용해서 해결하려 한 지점이다. 그는 오직 산술학만으로, 또 오직 기하학만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산술적으로 접근했을 때도 음악이 필요하고(비합리적인 비율은 불협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세계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기하학적으로 접근했을 때도 음악이 필요했던(산술학만으로는 세계 전체의 음악을 표현할 수 없다) 것이다. 결국 그의 저서에서 이 문제는 미결정된 상태로 끝난다. Pesic은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오렘이 기하학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해서 오렘은 우주의 음악을 사건의 본질적인 비순환성irreversibility과 연관 짓는다. 따라서 천체들은 계속해서 다른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지점에서 음악적인 함의를 이끌어낸다. 천체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canticum novum, 그러나 들리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는 하늘Heaven와 지구Earth가 인과적으로, 음악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Pesic은 이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오렘은 왜 하늘과 지구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무튼 오렘은 우주에서 계속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므로 그 영향을 받아 지상의 사물과 인간사에서도 계속해서 새롭고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Pesic은 오렘의 이러한 생각이 당시의 ‘ars nova’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오렘은 당시에 새로운 음악적 양식을 마련한 Phillipe de Vitry(1291~1361)와 직접적인 친분이 있었다. 오렘은 Vitry에게 Algorismus proportionum을 헌정했는데, 그 저작에서는 합리적인 비율과 비합리적인 비율의 덧셈과 뺄셈을 다루고 있다. Pesic은 이 저작이 그 둘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오렘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오렘(과 동시대인들)은 수학, 천문학, 음악을 함께 연관 있는 것들로 다루고 있던 것이다.

예컨대 보에티우스가 음악의 기본적인 비율이 ‘superparticular’(n:n+1)이라 한 이래, Vitry는 당시에 알려진 것들(23의 제곱수를 포함한 비율) 말고 또 다른 compound superarticular interval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이 문제를 음정musical interval’이 아니라 당시 문젯거리였던 리듬 표기법rhythmic notation과 관련해서 제기한 것이었다. 이처럼 음악적인 문제는 산술학과 연관되어 탐구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오렘은 위의 결과를 천구의 하모니에 대한 문제에 적용시켰다. 우선 그는 두 천체의 'conjunction',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일어나는 횟수가 천체들의 속력의 비의 차이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만약 천체들의 속력의 비가 superparticular하다면, 계속 한 점에서 합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관측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렘은 어떠한 두 천체의 운동(속력)주조화 비율'을 따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만약 천체가 하모니를 만들어낸다면 이것은 속력이 아니라 다른 요소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우주의 하모니에 대한 당시의 이해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이어질 문제는 무엇이 우주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었다. 오렘이 제시한 요소는 천구의 부피또는 천체의 양quantity of orb이었다. , 그는 비록 고대 우주론에는 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와 양립불가능한 요소가 있다는 문제가 있지만 우주의 하모니에 대한 개념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오렘이, 천구의 비순환성이 수학적인 공약불가능성 및 ars nova의 음악적인 내용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에게 있어서, 또 동시대의 학자들에게 있어서 음악이 천문학, 산술학, 기하학 사이를 매개하는 본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오렘뿐만 아니라 당시의 학자들이 천구에서 음악이 만들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전제하고 모든 논의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 그토록 많은 사실들을 의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에는 하모니가 있다는 생각에는 회의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을까?

 

 

Chapter 5. Kepler and the Song of the Earth

 

음악은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가 그의 새로운 천문학을 제안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행성의 운동에 대한 세 번째 법칙은 그가 행성 관측 자료들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harmonious relation를 찾는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이다. 그는 사실 세 번째 법칙을 법칙law"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이 관계를 행성의 운동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찾는 커다란 프로젝트의 일환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신플라톤주의적Neoplatonic인 사상과 실용적 음악 및 동시대의 음악 작품에 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Wurttemberg에서 시작해 Tubingen(1589-1594)을 거치며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하고 음악 이론을 배웠다. 첫 번째 직장으로 Graz(1594-1600)에서 수학 선생을 맡았는데, 다방면에 걸친 음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는 Orlando di Lasso의 음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600년에 Prague로 이동한 후, 그는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전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루돌프의 궁전에서는 실용적인 음악과 이론적인 음악이 모두 중요하게 다루어 졌다. 마지막으로, 루돌프 2세가 사망하자 케플러는 프라하를 떠나 여생을 Linz(1612-26)에서 선생으로 지냈다. 그 학교 또한 음악적인 활동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케플러는 각종 음악 활동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케플러는 전문적인 작곡가나 연주자가 아니었지만 일생동안 음악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실질적으로도 그는 조율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Turkish chantGregorian chant의 골격skeleton, 선율적 구조melodic structure의 차이를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우주가 기하학적인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플라톤적 이상에 동조했지만, 그 이상을 보이기 위해 고대의 음악이론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동시대의 음악이론을 활용했다. 예컨대, 그는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 귀의 판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수에 대한 사변에 빠져버렸다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협화음의 근거가 산술학이 아닌 기하학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러한 신조에 따라 정오각형에서는 협화음의 기하학적 비례를 찾았지만, 정칠각형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Pesic은 케플러가 음악적인 이유 때문에도 정칠각형이 표상하는 3:7의 비율을 거부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매우 불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라고 해서 그것이 우주의 조화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은 일견 비약인 듯하다. 하지만 케플러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를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원준식(2013)은 케플러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을, 우주 전체가 동일한 원형archetype’들에 따라 창조되었을 것이므로 천체의 운동에서 그런 원형적인 조화를 발견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천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또한 음악이론의 목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편 케플러에게 있어서 어떤 소리를 조화로운 소리로 경험하게 하는 주관적인 조건은 우리 안에 있는 기하학적 원형들이다. , 창조과정에서 그런 원형들이 인간의 영혼 속으로들어 왔고, 영혼이 협화음 속에서 발견한 기하학적 비례를 자신 안에 있는 원형들과 비교하며 그것을 조화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귀에 불쾌하게 들리는 소리는 우리 안에 있는 원형과 잘 맞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원형과도 잘 맞지 않는 것이다.

한편 케플러는 행성의 다성음악polyphony에 대한 모델로서 당시 음악의 다성적 특징을 강조했다. 비록 Lassomotet의 다성적 특징을 완전히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이러한 분석 방법을 행성의 다성음악에 적용했다. 6개의 행성은 각각의 선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선율들은 다성적으로 하모니를 이룬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glissando를 매개로 케플러의 Turkish chant 분석과 우주의 음악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성들은 연속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glissando같은 방식으로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케플러는 Turkish chant를 분석할 때 glissando를 표기하기 어렵다고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가 행성의 음악을 지상에서도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Pesic은 케플러가 LassomotetIn me transierunt을 행성의 음악과 그나마 가까운 음악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이 motet을 케플러의 행성 음악 중 지구의 음악과 연관 짓는 것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지구는 MI FA MI 라고 음을 내고 있는데 Lassomotet의 처음 부분 또한 똑같이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편, 몹시 의아스럽게도 케플러는 성sexuality적인 측면에서 음악과 천문학에 접근하기도 한다. 예컨대 여성적인 수와 남성적인 수를 나누어서 여러 음정에 적용하는가 하면, 행성들의 운동을 여성과 남성의 다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가 루돌프 궁전에서 만연했던 신비주의occultism을 경멸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태도는 일견 모순되어 보인다. 우리는 케플러의 이러한 이른바 신비주의적 관념, 그리고 그 관념을 음악과 천문학에 적용하는 그의 행태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케플러의 천문학에 상당히 많은 음악적인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천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외의 요소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그가 원에 내접하는 많고 많은 도형 중에서 3개의 도형(3, 4, 5각형)을 선택한 데에는 원형적인archetypal 이유가 있다(Walker, 1978). 케플러는 구가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그 중심을 지나는 단면인 원은 인간의 영혼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구와 원의 관계는 신과 인간 영혼 관계의 유비인데, 이와 유사한 관계가 바로 3개의 정다각형과 플라톤의 정다면체들 사이에서도 찾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케플러는 위의 세 도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형이상학적인 요소가 천문학에 미친 영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저자가 전해주는 것처럼 케플러가 가진 성적인 관념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천문학에 대한 케플러의 주된 생각, 심지어 그와 관련된 신비주의적인 관념에까지 음악적인 요소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케플러에 대해 논의할 때 음악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함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