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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근대철학

칸트 철학의 출발점

근대철학의 위기와 칸트철학

 1. 데카르트가 마련한 근대철학의 전제가, 그 출발점과 목표가 붕괴했다.

  1) 인식주체는 매우 불확실 → 지각의 묶음

  2) 진리 역시 극히 취약한 기초를 갖고 있음. → 인과법칙조차도 있다고 할 수 없다.

 2. 칸트가 자기의 철학적 작업을 시작하는 곳은 바로 이 붕괴와 해체의 지점

 3. 칸트가 당초에 발딛고 있던 곳은 이성주의 철학

  1) 이성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

  2) 흄의 비판을 받아들임. : "흄의 비판을 통해 독단주의의 잠에서 깨어났다."

  → 자명한 것으로 가정된 '주체'라는 출발점이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주체'의 능력이 사실은 근거없는 독단이었다는 것

  3) 처음부터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인간이란 무엇인가?"

  1)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순수이성 비판』

  2)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인간의 행동·당위·도덕 등에 대한 문제→ 『실천이성 비판』

  3)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 인간의 목적개념에 대한 질문 → 『판단력 비판』

 ⇒ 인식-행동-목적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활동이 이성에 의해, 즉 인간이란 주체 자신에 의해 근거지어질 수 있는가를 다시 묻는 작업 ('주체'라는 지반에 새로이 기초공사'

 5. '이성 비판'

  1) '주체는 출발점이 될 자격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 주체는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려 함.

  2) 이를 위해 주체를, 이성을 피고로서 법정에 세워보자고 생각

  → 그래서 피고인이 무엇을 알 수 있고,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나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험 ('이성 비판')

  3) 흄이 극한적 형태로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근대적 틀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근대적으로 재배치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근대적 문제설정을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주체가 어떻게 가능한가'란 질문을 통해 다른 형태로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주체가 어째서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가?)

  4) 이를 위해, 경험, 지각경험, 감각경험 같은 것들을 기초짓는 선험적 기초, 그것을 가진 선험적 주체를 찾아내려고 한다.

 6. 결론적으로, 칸트의 이 계획 속에서 인간(주체)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

  1) 칸트철학이 누릴 수 있었던 영광의 이유

  2) 철학사에서 칸트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는 이처럼 '근대철학의 위기'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근대적 문제설정의 재건

Ⅰ. 첫째, '진리' 개념의 전환과 재건

 1. 흄은 귀납론과 인과법칙을 부정

  1) 인과관계란 관찰한 사람이 갖는 습관적인 추론

  2) 따라서 진리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2. '(사)물 자체(Ding an sich)' '현상'을 구별

  1) 경험한 사물의 모습은 '현상', 지각하기 전의 사물은 '물자체'

  2) 인간은 현상만 알 수 있다.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그렇다면 진리의 개념을 아예 다른 식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가?

  1) 진리를 대상에서 구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2) 인간의 지식은 모두 '현상'에 대한 것이다.

  → 인식대상은 현상이고, 이는 인식하는 주체가 만드는 것

  3) 이제 문제는 판단하게 하는 방식('판단형식')을 연구하는 것이다.

  → 진리는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만드는 우리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

 4. '선험적 종합판단'

  1) 분석판단 : 주어에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

   1] "모든 미인은 예쁘다"

   2] 분석판단은 선험적이다. → 언제나 타당하고 확실

   3] 대신 아무런 지식도 추가해 주지 않는다. (동어반복, tautology)

  2) 종합판단 :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1] "모든 미인은 키가 크다"

   2] 경험적이고 후천적이다. 

   3] 주어에 없는 지식을 우리에게 추가해준다.

   4] 대신 언제나 타당하지도, 확실하지도 않다.

  3) 그렇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고 타당한 판단은 없을까?칸트 고민의 핵심

   1] 선험적 명제처럼 언제나 확실하고, 종합판단ㄴ처럼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판단은 없는가?

   2]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

   3]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진리에 도달케 해주는 판단형식이다.

   → 칸트는 진리를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옳으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는 판단형식에서, 즉 '선험적 종합판단'에서 찾는다.

⇒ 이로써 흄에 의해 철저히 해체되었던 진리의 개념을 새로이 재건하게 된다.


Ⅱ. 둘째, 근대적 '주체'의 재건

 1. 흄의 비판

  1) 주체는 '지각의 다발', '관념의 다발'로 해체되어 버린다.

 2. 인간의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된다.

  1) 그런데 인간으로 하여금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는 무엇일까?

  2) 데카르트라면? → '주체'

  3) 흄이라면? → '주체'란 여러 가지 관념과 감각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항구적이고 항상적인 것이 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4) 칸트의 대답

   1]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은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선험적이다.

   2] 모든 인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며, 동일한 형태(형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 선험적 조건이 필요하다.

 3. '선험적(先驗的) 조건' : 우리는 어떻게 인식에 이르는가?

  1) 선험적 감성형식

   1] '감성'(Sinnlichkeit)

    ① '현상'은 인간마다 다르게 경험될 수 있다.

    ② 인식을 하려면 일단 감각기관을 통해 물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을 '감성'이라고 한다.

    ③ 어떠한 인식도 감성을 통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2] 공간

    ① 대상은 반드시 어딘가에, 즉 어떤 공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② 공간은 경험되지 않는다.

    ③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

    ④ 따라서, '공간'이란, 감성을 통해 대상을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이며 모든 인간이 경험보다 앞서 가지고 있는 '선험적 감성형식'이다.

   3] 시간

    ① 경험보다 선행하며, 경험을 가능케 해주는 감성형식이다.

  ⇒ 시간과 공간은 경험에 선행하며, 모든 인간의 인식에 필수적인, 그리고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2) '선험적 지성형식'

   1] '지성'(Verstand)

    ① 감성을 통해 물체를 받아들인 다음에는 판단을 하게 된다.

    ② 받아들인 물체를 분별해내고 그 물체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기관이 '지성'

   2] '범주'

    ① '범주'를 통해 대상의 성질을 구별하고 그것들을 결합해서 판단을 만들어낸다.

    ② 지성이 활동할 수 있으려면, 그래서 경험에 대해서 어떤 판단이 가능하려면 범주가 있어야 한다.

    ③ 따라서 범주는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하고, 경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좌우하는 것이다.

    ④ 총 12개의 범주

    ⑤ 공통되기 때문에 인간은 공통된 판단 혹은 공통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

   ⇒ 따라서 범주는 '선험적인 지성형식'이다.

  3) "지성 없는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 없는 지성은 공허하다"

  → 감성과 지성이 결합해야 인식할 수 있다.

  4) '이성형식' : '이념'

   1] '이성'

    ① 감성을 통해 시작한 인식은 지성을 통해 '이성'에 다다른다.

    ② '하나의 원리로 다양한 경험들을 통일시켜 파악하려는 능력'이라는 뜻의 '이성' → 칸트만의 고유한 개념 

   2] 세계, 자아, 신

   3] 경험하지 못 한 것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다 보니 서로 상충되는 주장이 나타나며, 양쪽 다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  '이율배반'

   → (넓은 의미로서의) 인간 이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4. '선험적 주체'

  1)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험이나 인식도 피해갈 수 없으며, 또한 확실하고 선험적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는 것들을 찾아낸 셈이다. 

  2) 그것은 바로 '선험적 감성'과 '선험적 지성'인데, 이런 능력을 합해서 '선험적 주체'라고 부른다.

  3) 관념의 다발에 불과한 경험적 주체와 달리 모든 주체에 공통

  4) 경험이나 감각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좌우

  5) 확실하고 항구적

흄에 의해 해체되어 버린 근대적 주체를 '선험적 주체'라는 확고하고 튼튼한 것으로 되살려냄.


Ⅲ. 셋째, 근대적 윤리학(도덕철학)의 확립

 1. 근본적인 질문 : "인간의 의지(및 행동)는 이성의 힘만으로 규제될 수 있는가?"

  1) 즉,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규제하는 보편적 원리가 인간의 이성 안에 있을 수 있는가?

  2) 인간의 의지를 규제할 보편적 원리가 이성의 내부에 있다는 것 → 인간 이성의 실천적 자율성이 원리적으로 확보될 수 있음을 뜻하는 셈

 2. '보편타당한 윤리원칙'

  1) "너는 언제나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원리로서 타당하게 행동하라"

  2) 법적인 보편적 형식을 취한 규칙을 선악의 잣대로 삼으라는 말. 실질적으로는 법에 정한 바를 선이라고 생각하라는 것.

  3) 계율을 통해 선을 정의하는 유대적-기독교적 전통으로 돌아간다.

 3. '자유'의 개념 새롭게 정의

  1) 의지와 행동의 자유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 하기 때문에."

  2) 이러한 "~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사는 것이 선이며, 올바른 윤리적 삶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율성과 자존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3) 따라서 자유란 "해야 한다"는 원칙, 의무에 따라 사는 것과 동일한 뜻을 갖는다.

  4) 극도로 계몽주의적인 성격

   1] 입법원리에서 어긋나는 의지나 욕망, 법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인간의 자율성을 포기한 것.

   2] 그런 원리에 따르도록 훈련되지 못한 대중은 일깨워지고 계몽되어야 한다.

 4. '법'적인 개념이 강한 칸트의 윤리학

  1) 보편적인 도덕원칙도 입법원리로 정의, 자유나 선 역시 도덕법칙에 의해 정의

  2) 공화주의자로서 프랑스혁명에 고무되었던 칸트로선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3) 중세와 달리 법을 통해 지배를 확립하려 했던 부르주아지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

 5. 그렇다면 '신'은?

  1)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이성의 영역에서 신은 증명될 수 없다.

  2) 실천이성의 영역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보편적인 도덕원칙이 차지함으로써 신이 개념적으로 들어설 자리는 없다.

  3) 하지만, 도덕철학적인 필요에 의해 실천이성이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

  → 사람들을 보편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데 신이 필요하다.

     "도덕행위란 신에 대한 실천적 긍정"

   1] 중요한 것은 신의 존재가 '실천이성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2] 종교 자체가 근대적인 윤리학을 위해 복무하는 도덕철학이 된 것

⇒ 칸트는 근대적 윤리학의 확립자요 완성자

⇒ 결국, 칸트철학은 '근대철학의 승리'를 선언한 셈이다.


Ⅳ. 새로운 난점들 : 영광의 그늘

 1. 근대철학 지반 복구 작업 : 근대적 문제설정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둥으로서 '진리'와 '주체'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

  1) 진리의 주관화 : 진리를 대상이 아닌 주체 자체의 내부에서 찾는다.

  2) 주체(주관)의 객관화 : 모든 주체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경험이나 인식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인 형식을 주체 내부에서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모든 주체들에게 공통된 것임을, 따라서 객관적인 것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3) 이러한 두 과정의 복합으로 인해 진리는 주관화되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데 머물지 않을 수 있었다. (진리의 주관화 → 주체의 객관화)

 2. 새로운 위기의 요소들

  1)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생성 또는 전이시킨다.

  2) 첫째, 진리에 관한 문제

   1] 진리를 주관화하는 전략과 관련된 것 

   2] '현상'과 '사물 자체'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 그건 아무도 모른다.

   3] 진리란 오직 주관의 형식으로만 정의된다.

  ⇒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라고 간주하는 지식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누구든 오인하는" 선험적 허위, 선험적 허구일 가능성은 없는가?

  3) 둘째, 선험적 주체에 관한 문제

   1] 순수이성의 추상성과 비역사성 → 피히테와 헤겔에 의해 집중적으로 지적

   2] 더욱 근본적인 난점은 '선험적 형식' 자체에 있다.

   3] 선험적 지성형식인 '범주' → 범주 이전에 범주를 나누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은가? (ex.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는 10개)

   4] 선험적 감성형식인 '시간/공간'

    ①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뉴턴의 물리학 덕이다. 칸트의 철학은 뉴턴의 물리학에 기초하고 있다.

    ② 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해서는 체계가 유지되지 못 한다. → 시간과 공간은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므로 선험적 형식이라고 할 수 없다.

  4) 셋째,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

   1] 칸트에게 실천적 판단을 하는 이성은 이론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과 전혀 별개의 것이다.

   2] 순수이성은 '선험적 형식'이라는 이유로, 진리를 기초지우는 확실한 근거로서 정당화된다.

   3] 그러나 실천이성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즉, '보편입법의 원리'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4] 실천이성 자신이 스스로를 근거지운다. → 칸트의 비판철학은 '독단론'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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