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비판철학과 헤겔
1. 헤겔?
1) 변증법적 사고를 체계화
2) 헤겔의 제자임을 자처했던 마르크스를 통해서,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통해서 헤겔철학 영역 밖으로까지 영향력 확대
3) 20세기 중반까지, 그리고 일부 지역에선 지금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
→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이라는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 헤겔의 입론을 간략히 검토해 보자.
2. 근대철학과 헤겔의 연관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칸트철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1)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피히테와 셸링을 비판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제설정을 세운다.
2) 비판철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
1] 첫째, 칸트는 사물 자체와 인식 주체를 분리한다.
① 그렇다면 인식이란 서로 분리된 양자를 사후에 이어주는 과정
→ 사물 자체란 인식을 통해 표상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되지만, 그 표상이 옳은지의 여부는 주체의 의식 외부에선 확인될 수 없다는 난점이 발생
② 그렇다고 피히테처럼 '자아' 안에 양자를 끌어넣음으로써 해결하는 주관주의 역시 대안이 아니다.
⇒ 어떻게 하면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객관과 주체를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인가?
2] 둘째, 칸트는 '인식 이전의 인식능력(선험적 능력)'에 대한 연구를 했다.
① 인식능력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식이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식능력을 연구하기는 불가능하다.
⇒ 그렇다면 참된 인식의 기초나 기준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
⇒ ★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자기의 고유한 길을 찾아냄.
Ⅱ. '절대정신'의 변증법
1. 헤겔 이전의 주 · 객체 통일
1) 헤겔 역시 사물 자체와 주관을 분리시키지 않기 위해선 근원적인 통일을 처음부터 설정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2) 피히테: 이 근원적인 통일은 '자아'를 절대화해서 만들어냄.
3) 셸링
1] 역시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절대자'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그러나 피히테처럼 자아가 비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3]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아를 근거로 자연을 도출할 수는 없다고 비판
4] 오히려 주체-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자연이 곧 주체요 정신이다.
5] 자연은 정신이자 동시에 자연 안에 있는 정신 자체의 산물인 물질이다. 따라서 자연은 자신을 객체로 정립하는 주체로 간주된다. → 자연은 무한한 활동. 절대자란 바로 이 자연이다.
6] 개개의 현상들은 절대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
7] 현상들은 나름의 계열을 이룬다. → 실재적인 것이 우위를 차지하는 계열(자연) / 곤념적인 것이 우위를 점하는 계열(정신, 역사)
2. 셸링의 발상법에 빚진 헤겔의 동일성 확보 방법
1) 그 자체가 객체기도 한 주체를 설정하는 것
2) 이것은 절대자, 절대정신 → 절대 '정신'인 것은 그 전체의 본성이 활동적이고 산출적이라는 점에서 주체로서의 정신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
3) 셸링과 헤겔 사상간의 차이점
1] 셸링: 정신은 자연과 직접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 그에 따라 자연의 변화와 법칙 속에서 정신의 운동을 발견하는 '자연철학'이 중요하다.
2] 헤겔: 절대자는 무엇보다도 우선 '정신'. → 외화하여 객체가 된다.
3. ★ 정신의 외화(소외) - 정신과 대상의 변증법
1) 정신은 스스로를 외화(소외)하여 자연, 사회, 역사 등의 객체(대상)가 된다.
→ 자연, 사회, 역사는 이 정신의 '표현'
2) 특히 중요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나 역사.
→ 자연철학보다는 사회를 다루는 법철학이나 역사를 다루는 역사철학이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3) 사회나 역사로 전환된(외화된) 절대정신은 역사의 발전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발전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다.
→ 자기에게로의 복귀('자기 내 복귀')
4)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절대정신의 실현이란 목적을 향해 발전해 가는 '목적론적 과정'
5) 정신에서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원환운동. 그러나 끝날 때는 좀더 높은 단계로 고양되는 원환 운동 (부정의 부정) → 정신과 대상의 변증법(절대자의 변증법) : 헤겔 체계 전체를 특징짓고 있는 법칙
⇒ 헤겔철학에서 절대자란 주관과 객관의 통일이지만, 이는 셸링철학에서와 달리 '외화'와 '자기 내 복귀'라는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통일되어 가는 목적론적 과정이다.
4. 동일성과 함께 '차이'를 포착하려 함 → 셸링과의 좀더 중요한 차이점
1) 셸링에게는 자연과 정신이 무차별적으로 동일한 것
2) 헤겔은 동일성, 그리고 동시에 '차이'까지 포착하려 한다.
1] 자연과 정신의 차이, 정신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단계상의 차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차이를 사상의 틀 안에 포섭하려고 한다.
2] 하지만 헤겔 사상에서 차이란 오직 동일화시키는 힘(동일자)인 절대정신에 포섭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여기에 포섭되지 않는 것은 배제되고 억압된다. (푸코와 들뢰즈 등의 비판)
→ '차이'가 차이로서 인정되는 것이 아님.
⇒ 헤겔에게 차이란 사실상 동일자의 포섭능력을 과시하는 요소일 뿐이며, '변장한 동일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Ⅲ. ★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 : 위와 같은 관점에서 진리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1. 인식의 대상은 주체 내부에 있다. (의식 내부에 있음)
1) 피히테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다.
2) 이런 관점에서 헤겔은 지식을 "대상에 대한 주체의 연관"이라고 정의한다.
→ 의식 내에서 만들어지는 연관
3) 하지만 피히테와 달리 대상을 정립하는 것이 곧 진리는 아니며, 따라서 지식이 진리는 아니라고 한다.
2. 그렇다면 어떤 지식이 진리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1) 칸트라면 선험적 인식 능력을 기준으로 제시하려고 할 것이다.
2) 그러나 인식 이전에 인식능력을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
3) 지식에 대한 평가기준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의식(시대의식)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고 한다.
⇒ 지식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4) 역사적 의식 속에서 진리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 이미 성립한 하나의 지식이 제공한다. (스피노자를 인용하여 진리는 이미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5) 악순환? - 지식의 평가는 진리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기준은 지식이 제공한다는 악순환! → 근대적 문제설정의 딜레마에서 연유 (믿을만한 재판관이 없다.)
3.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 해겔의 묘책
1) 진리: 지식의 외부, 의식의 내부
1] 진리는 지식과 다르기에 대상-지식 관계의 외부에 있어야 한다.
2] 대상 자체가 의식 내부에 있는 것이라면, 대상과 개념의 일치로 정의되는 진리 또한 의식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다.
3] 요컨대, 진리는 지식의 외부에 있지만, 의식 내부에 있는 것
⇒ 의식 내부에 지식과 지식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두 들어있는 셈
2) 의식의 지식 평가(자기 의식)
1] 의식은 자기 내부의 진리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의식이 이 기준으로 지식을 평가한다.
2] 그 지식은 대게 그 시대에는 진리로 간주되던 지식
3] 결국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진리의 기준이 되었던 지식 자체도 의식이 스스로 검사하고 다시 평가한다.
→ 의식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을 의식 스스로 다시 검사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다.('자기의식')
⇒ 진리란 의식 혹은 "정신 자신의 내적인 관계"이다.
3) 진리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다. →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진리를 확인하고 보증해 주는 것은 발전해 가는 절대정신 자신이다.
Ⅳ. 스피노자주의자?
1. 헤겔의 사상은 스피노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2. 절대자
1) 우선 셸링의 자연철학 자체가 그렇다. → 자연을 정신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자연을 실체의 양태로 간주하는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유추한 것
2) 헤겔
1] 절대자란 스피노자식으로 표현하면 '실체'이다.
2] 이것이 외화되어 만드는 자연, 사회, 역사는 스피노자 개념에서 '양태'이다.
⇒ 스피노자의 실체/양태 개념을 주체와 객체의 통일성을 이루어가는 목적론적 과정에 적용한 것
3. 지식과 진리에 대한 변증법
1) 진리에 대한 판단에 앞서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받아들인다.
⇒ 의식이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 제시
2) 그리고 그것을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란 개념으로 전환
⇒ 진리는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란 개념으로 전환된다.
4. 이러한 '적용'은 스피노자의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벗어나는 '변형'이다.
1) 스피노자가 거부했던 주체와 객체라는 근대적 범주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 실체와 양태란 개념이 복무하게 된 셈.
2) 연장과 사유라는 속성의 일치란 명제 역시 주체와 대상의 일치라는 명제로 전환.
3) 나아가 헤겔은 이를 '절대정신의 자기실현'이라는 목적론적 과정에 포섭시켰는데, 이러한 목적론은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명시적으로 비판하며 거부했던 것이다.
4) 진리의 문제 또한 스피노자의 명제가 주체와 대상 양자를 통일시킬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는 데 변형되어 사용된 것.
⇒ 근대화된 스피노자주의.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 포섭되기 위해 '근대화'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다.
Ⅴ. '철학의 종말', 근대철학의 종말
1. 헤겔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칸트에 의해 다시 부흥의 기치를 높이 든 근대철학을 정점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1) '절정에 선 근대철학'
2)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개념과 장치들을 개발
→ 특히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은, 목적론적 과정으로서 간주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난점이 있지만, 지식의 역사적 정정과정 속에서 진리를 파악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이전의 독단주의를 비판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2. 헤겔로선 또 다른 딜레마를 절감한다.
1) 진리란 절대자의 자기의식이라는 헤겔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헤겔이 생각해낸 이 진리의 기준 역시 이후 정정되고 폐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2) 이는 논리적인 난점이지만, 사실 진리 개념에 대한 입론을 제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난점은 아니다. → 중요한 것은 진리기준 자체의 정정과정을 파악하는 입론의 현실성이고 효과이기 때문.
3) 하지만 확고한 진리를 추구하는 근대적 문제설정 속에 있던 헤겔에게 이 난점은 방치되어선 안 될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 진리의 정정과정이라는 기준을 절대적 진리의 자리에 두고 싶었던 것
1] 진리와 지식의 변증법은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과정이므로, 헤겔 자신의 주장이야말로 절대정신의 실현을 목격한 지식이라고 한다면 절대적 진리가 된다.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과정을 다 목격한 사상)
2] 요구되는 하나의 전제: 헤겔의 지식이 형성된 당시야말로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역사의 종착지가 되어야 했다. → 자기가 살던 시대를 절대정신이 완성되는 시대라고 정의하며, 프로이센 국가를 그 실현을 책임지는 국가로 간주.
⇒ 철학은 (헤겔의 사상 안에서만) '종말'을 고한다.
4) 그 결과 '진리의 지속적인 정정과정'이란 명제는 자신에 의해 독단적 명제로 전환된다.
→ 역사 속에서 진리의 기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지식이 검사되는 것이 아니라 헤겔의 진리 기준을 위해 역사가 완성이란 이름을 얻고 지식의 정정도 중지되는 사태가 발생
5)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벗어나지 못 한 헤겔
1] 절대적 진리란 목적을 포기할 수 없었다. → 목적론과 독단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 이런 의미에서 엥겔스는 헤겔철학에서 완성된 '체계'와 혁명적인 '변증법'이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며, 결국은 체계의 완성을 위해 변증법을 굴복시킨다고 비판했다.
→ 근대철학이 갖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를 다른 형태로 보여주고 있는 셈
3. 이성의 책략
1) 차이는 동일성으로 환원된다. → 모든 개체는 이제 그것이 갖는 보편성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개별성은 보편성으로 환원)
2) 모든 변화는 절대정신의 목적론적 운동에 포섭되며,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변화는 목적으로 환원)
3) 자연, 사회, 역사는 절대정신의 소외 (관념으로 환원)
4) 헤겔철학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기에 그 안의 어떠한 내용도 절대적인 것이 된다. → 이러한 환원 전체가 절대적인 것으로 된다. (환원 전체가 절대성으로 환원)
⇒ 근대철학은 이제 자신이 포섭할 수 없는 것은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능한 이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성의 책략)
'서양근대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출발점 (0) | 2018.01.08 |
---|---|
마르크스 철학의 출발점 (0) | 2018.01.07 |
피히테 철학의 출발점 (0) | 2018.01.03 |
칸트 철학의 출발점 (0) | 2017.12.27 |
흄 철학의 출발점 (0) | 2017.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