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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고대철학,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Ⅰ. 전사

혹자는 이 책이 편향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비판한다. 아직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 비판이 타당하다면 철학사 저술로서 큰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책이 출판된 시기(초판은 1948년, 제8판은 1965년)가 오래되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아무리 업데이트 되었다고 해도, 65년 이후 장장 50년 동안 축적된 학문적 성취는 반영하지 못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풍부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철학'이라는 것의 내부 사정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짧은 개론서를 단순히 일견하는 것보다는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저자가 강조하며 책의 모토로 삼은 사상적 연속성에도 나는 동의한다. 어떠한 생각도 '무'에서부터 출발할 수 없고, 따라서 어떤 시대의 사상가이든 그보다 앞선 사상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이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그 연속성을 다각도에서 밝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도움을 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과학사, 특히 소위 서양과학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서양철학의 큰 흐름 정도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일단 펼쳐본다. 글의 내용은 저자의 기술 또는 주장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이해와 의문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저자가 직접 피드백을 주면 참 좋겠지만, 뭐, 이 점은 내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겠지.



예상되는 독자 :

철학을 전공/비전공한, 철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들.

(과연 비전공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한다면 산증인이 될 텐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책의 문제 설정 : 

철학사상의 생성을 밝히는 작업.

플라톤의 유산의 바탕 위에서 중세기 자체에 관해 보다 깊이 이해하는 일.



서론 : 일반적인 철학사의 본질과 가치

철학의 역사는 역사과학인 동시에 철학이다. 역사과학으로서의 철학사는 다음과 같은 작업을 통해 성립된다. 개념과 사상이 생겨나는 원인을 추적하고 이것들을 보다 커다란 사상계열, 체계적인 연관, 그리고 포괄적이고 정신적인 조류(특히 시대와 민족의 정신적인 조류)에 끼워 넣고, 마지막으로 철학의 문제와 개념, 학설이 생겨나는 모태인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을 발견해냄으로써. 그렇게 하기 위해선 어떠한 방법이 필요한데, 일차적으로는 사료에서 사실을 길어 올리는 일, 그다음으로는 객관성(또는 무전제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의 역사 또한 역사과학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철학사는 어떻게 철학이 될 수 있는가? 다른 여러 가지 견해를 알게 됨으로써 개인의 시간 · 공간적인 제약을 무너뜨리고, 여러 주관적인 전제를 벗어나 점차로 진리(진리?)를 볼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서 철학사가 철학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을 인용한다. "우리들은 역사에 의해서만 역사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한 진리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정신사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을 철저하게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쓰이는 많은 개념은 과거와 의미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지 못할지 몰라도) 원래적인 뜻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한 원래적인 뜻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철학사 자체가 인식비판이 되며, 따라서 진정한 뜻의 철학이다.


고대철학

고대철학을 왜 연구하는가? 유럽 사고의 정신적인 유산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정신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첫째로 오늘날 우리들(적어도 유럽인들)의 철학적인 사색과 과학적인 사고 전체의 본질적인 개념이 고대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더 나아가 철학의 본질적인 여러 부문들도 고대에 이룩된 것들이다. 또한 철학적인 사고의 여러 유형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설명되지 않은 문제도 많다. 예를 들면, 파르메니데스의 시 전체를 일관성 있게 설명하려는 문제라든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속에서 발견되는 모순점을 해결하려는 문제 등...) 

이 시대를 개관하기 위해 네 부분으로 나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 아티카 철학 / 헬레니즘 철학 / 로마제정시대 철학.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물음은 근원적이고, 그들의 태도는 일반적으로 존재론적이다. 그들이 자연에 관해 말할 때는, 정신과 전체로서의 존재(존재 그 자체?)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연학자라기보다 오히려 형이상학자이다.


신화

a) 신화의 개념 : 

그리스철학, 특히 초기 그리스철학을 연구할 때에는 신화적인 요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서시를 생각해보자. 서시를, 그리고 서시와 진리편, 의견편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요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신화란 세계와 생명, 신들과 인간들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의 신앙이다.

b)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소의 신화 : 

호메로스의 신화 해석 : 모든 생성의 원인은 바다의 신인 오케아노스와 테티스, 즉 물이다.

헤시오도스의 신화 해석 : 카오스(혼돈)와 에테르, 에로스가 모든 것의 근원이다. 삶의 부질없음, 악의 근원, 운명과 필연 등과 같은 문제로 시작한다. 구체적인 사실들을 직관하고, 그 직관을 보편화해서 세계 전체에 전용하며, 마침내 존재와 사건 전체를 그것으로 해석하는 사고가 두드러진다.

c) 오르페우스 학파의 가르침 : 

6C에 새로운 조직적인 신화가 그리스로 내려온다. 금욕주의와 신비주의, 영혼숭배와 저 세상에 대한 희망 등이 뒤엉켜 있다. 영혼이란 피가 아니라 정신이다. 이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미 잘 구축된 신학과 우주생성론을 논하고 있다. (박종현, 무속적 '신들림'과 헬라스 철학, 2001. 을 참고하자)

d) 미토스와 로고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후세에 전했을 뿐 그 증명(회의하고 증명하고 근거지움)은 전해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화를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에 동의한다. 사회의 정신적인 공동재산을 가지고 맹신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색을 통해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증명하는 태도는 신화와는 다른 새로운 태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의 문제제기와 개념적인 직관들은 철학적 개념 속에 계속해서 살아남아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철학적인 인식비판을 할 수 있다. 철학의 합리적인 사고수단이 정말로 모두 합리적으로 근거지워져 있는가? 아마 그렇지는 못할텐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정신이 지식보다 훨씬 크며, 지혜에로 나아가는 독자적인 길로서의 긍정적인 뜻의 신화까지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