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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고대철학,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Ⅱ. 밀레토스학파와 피타고라스학파

밀레토스학파와 피타고라스학파

그리스철학은 소아시아 연안에 있는 이오니아에서 발생했다. 이오니아철학을 흔히 자연철학이라고 한다. 실제로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두드러짐에도 불구하고, 그보다는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저자는 말한다. 근원과 원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존재 전체의 원리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존재자 자체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 원래 목적이다.

A. 밀레토스 학파

a) 탈레스(Thales, 624-546)

▷ 아르케(arche)로서의 물 :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최초의 철학자들은 물질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최초의 근원(원리, arche, principia)을 찾아 헤맸다. 이 근원들은 사물의 참된 실체(본질, ousia)이다. 또한 그것은 원소이기도 한데, 참된 근원들에서 사물들이 생겨나서 다시 그것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개체는 참된 실체의 한 가지 사건(상태, pathos)에 지나지 않는다. 원질(원리, arche)이 무엇인지는 서로 다르게 말한다. 그러나 탈레스는 모든 것의 원리를 '물'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잠깐 멈추자. 첫 번째 철학자인데, 그에 대한 설명이 벌써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고대 철학, 특히 형이상학에서 주로 쓰인 여러 용어가 갑자기 등장한다. 근원(원리, arche), 실체(본질, ousia), 원소(stoicheia), 상태(사건, pathos), 그리고 원질. 물론 문맥을 통해 용어의 뜻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 그 의미를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① arche : 모든 것을 조종한다

② ousia

③ pathos

④ stoicheia


중요한 것은, 그가 물이라고 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근거'라고 하는 개념이다. 탈레스는 이 개념을 제일 처음으로 제기했다. 또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특수(개별) 과학처럼 존재의 한 부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존재 자체'를 다룬다. 또한 제일근거를 찾아 헤맨다. 이것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앎 자체를 위해서 추구하는 앎이다. 탈레스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학문적인 형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하였다.


▷ 만물은 신으로 가득 차있다 (물활론?) : 

이 사상은 범신론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이 물이라고 하는 명제 또한 일원론을 표명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최초의 철학적 사고가 세계를 인간의 측면으로부터 해석한다는 것, 즉 인간이 자신의 특수하고 독자적인 삶에서 알아낸 범주를 통해서 세계를 질서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탈레스는 자석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생명의 측면으로부터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위 이러한 물활론은 자연철학적이라기보다는 인식론적인 유형에 속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의인적인 개념들에 의해 존재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스는 정말로 신적인 것들을 현실로 생각했다. 원리(arche) 사상이 이런 생각으로 인도해준다. 생각을 하는 지성은 신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피시스(자연, 본성, physis)라고 하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경험은 모든 것들을 가득 채우는 신적인 것을 보증해준다. (arche를 만물이 신으로 가득 차있다는 탈레스의 명제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하다.)

탈레스를 위시한 고대 자연철학자들의 아르케를 찾는 작업은 혹자가 제시한 '인식론적 동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논리적으로 완전 무결하진 않지만(만물이 물, 공기 또는 불이라면, 왜 그렇지?) 어떤 하나의 원리로 만물의 현상에 대해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즉 인식론적으로 동화시킬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합리적으로 근거를 지우는 작업이다. (근데 이 개념을 어디서 봤더라? 좀 찾아봐야겠다.)


b)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610-545)

탈레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밀레토스에서 살았다. 『자연에 관하여(peri physis)』라는 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아페이론(apeiron) : 

아르케는 아페이론이다. 논리적으로 더 자세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이고, 시간적 · 공간적으로 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탈레스 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원리를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존재에 타당한 한 가지 근거는, 모든 것들에게 공통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규정이 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조금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이미 어떤 실재적인 것일 수 없지 않을까?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러한 무한정적인 것(indefinitum)을 무한한 것(infinitum)과 동일시 하는데, 무한하더라도 어쨌든 시공간이라는 현실에 존재하고 있으니 실재적인 것이다. 여기서 일단 모순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지만, 고대의 원초적인 사고를 지나치게 논리화해서는 안된다.

여기서도 잠깐. '실재적'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건 무슨 뜻일까? 아마도 최근에 읽었던 논문(강성훈, 2012)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면 될 것 같다. 

고대의 해석가들은 모든 생성들이 그 소재를 받아내는 무한한 저장고라고 파악함과 동시에, 신적이고 죽지 않는 것이며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 세계형성론 : 

여러 가지 대립자들(따스함과 참, 축축함과 마름)이 아페이론에서 '분리되어' 나온다. 이 대립자들로 세계가 형성된다. 즉, 아낙시만드로스는 분리의 과정으로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아무 규칙없이 서로 분리되고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것들로 질서지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세계를 신적인 것으로 파악했는데, 역시 물활론과 범신론보다 더 오래된 '의인관'이라 할 수 있다.


c)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5-528)

▷ 아르케로서의 공기 : 

아르케를 공기로 보았다.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해 이룩된 추상의 높은 단계는 다시 낮은 단계로 내려간 것인데, 이는 실재를 구출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공기의 희박함과 짙음에 의해 다른 것들이 생긴다(즉, 변화한다). 또한 공기는 신적인 것이다. 역시 의인적은 개념들로 존재를 해석하는 태도라 볼 수 있다.



B. 피타고라스학파

피타고라스학파는 여러 가지로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 형편이다.

a) 외적인 역사

▷ 피타고라스(570-496) : 사모스에서 태어나 40세 쯤 이탈리아의 크로톤으로 이주해서 거기서 주로 활동하다 작고했다. 그의 실제 모습은 전설에 싸여져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 비밀결사나 수도단체같은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금욕주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띤, 철학적-과학적, 종교적-윤리적인 단체였다. 오르페우스교의 이원론의 계열에 속하며, 오르페우스교의 영혼윤회설을 받아들였으며, 다방면으로 학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 피타고라스 구파 : 피타고라스가 직접 크로톤에서 창설하고 지도했던 단체이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알크마이온과 필롤라오스 등이 있다. 귀족주의적인 정신태도를 강하게 띠고 있어서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이르러 민주주의 당파에 의해 해체되었으나, '피타고라스 신파'로 재건된다.

▷ 피타고라스 신파 : 타렌트에 본거지를 두고 기원전 4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위 피타고라스학파"라고 이야기할 때는 바로 이 신파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파는 구성원의 경향성에 따라 크게 '청종자(pythagorastai)'와 '수학자'로 나누어진다. 청종자는 생할규칙에만 주목하여 엄격한 금욕주의를 준수하는 사람들이다. 수학자는 구파의 귀족주의를 이어받아서 학문적인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타렌트의 아르키타스, 시라쿠스의 히케타스, 에크판토스와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쿠스 등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히케타스와 에크판토스, 헤라클레이데스가 이미 지구가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후 페리파토스학파의 아리스타르쿠스는 람사코스의 스트라톤을 통해서 헤라클레이데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자전 뿐만이 아니라 궤도에 따라 공전한다는 사실도 가르쳤다. 이러한 이론은 마침내 '고대의 코페르니쿠스'라고 불리는 셀레우케이아의 셀레우코스(기원전 150년경)에 의해 확고해진다.)


b) 피타고라스적인 생활양식

생활양식의 배경은 오르페우스교로부터 전해진 영혼의 윤회설이다. 육체는 영혼의 무덤(soma, sema)이기 때문에 정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금욕과 정신적인 수행(철학과 수학 등)이 정화의 길에 속하는데, 이중에서 후자가 바로 피타고라스학파를 오르페우스교와 구분 짓는 지점이다. 생활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우정과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만드는 이상이다. (박종현, 무속적 '신들림'과 헬라스 철학, 2001. 을 참고하자)


c)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

▷ 아르케로서의 수 : 피타고라스학파는 만물의 원리(arche)를 수라고 했다. 따라서, 존재자의 원리는 질료가 아니라 '형상' 속에서 찾아졌다. (물론 피타고라스학파가 '형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개념을 정립한 것은 아니다) 수는 형상을 부여하고, 이 형상을 통해서 규정되지 않았던 것이 규정된 그 어떤 것으로 된다. 이 생각은 (비록 저자는 구별하고 있지 않지만) 필롤라오스의 이론에 의해서 분명해진다. 그는 만물의 원리를 한정하는 것들(perainonta)과 한정되지 않은 것들(apeira), 그리고 조화(harmonia)라고 주장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정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수의 기능이 바로 '한정'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바로 만물을 구성하는 원리이며, 또한 인식의 원리이기도 하다. 

보충해보자. 저자는 여기서 필롤라오스의 이론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형상'이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저자가 여기서 '형상'이라는 용어로 의미하는 바는, 어떠한 사물을 지금 있는 그대로 있게 해주는 요소(34쪽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롤라오스의 이론과 형상의 다양한 의미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리고 추가로, 피타고라스 본인의 가르침으로 여겨지는 (그나마) 신빙성 있는 단편을 통해 필롤라오스의 생각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생각해보자.

필롤라오스의 이론 : 필롤라오스는 한정되지 않은 것들이 한정하는 것들에 의해 한정되어 조화가 이루어질 때만 우주와 만물이 생성된다고 생각했다(B1, B9). 한정하는 것들이란 기하학적 요소와 수적 비율, 또는 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정되지 않은 것들이란 불, 공기, 물, 흙 등의 질료적 요소와 시간, 숨, 허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화는 무엇일까? 그가 조화의 예로 들고 있는 것은 음계(harmonia)와 같은 것이다(B6). 그런데 음계란 무한한 연속체로서의 소리가 일정 비율들에 의해 한정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한정되지 않은 것들이 수적 비율로서의 한정하는 것들에 의해 한정되어 음계와 같은 조화로운 음악적 구조가 이루어질 때 우주와 만물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플라톤의 우주론과 좋음의 이데아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필레보스』, 『티마이오스』). (이기백, 2005)

피타고라스의 이론 : 이암블리코스가 전하는 단편(DK58C4)는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에 대한 것들 중 가장 신빙성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피타고라스는 델포이의 신탁을 테트락튀스(tetraktys), 즉 세이렌들(Seirenes)이 이루어내는 조화(harmonia)와 연관짓는다. '세이렌들이 이루어내는 화음(조화)'이라는 그의 표현은 플라톤이 『국가』 617b에서 말하는 '천구들의 화음'의 싹을 보여주는 것이다(플라톤은 그곳에서 여덟 세이렌들이 천구들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피타고라스에게는 천구 개념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그의 경우에는 우주의 화음이라는 표현이 무난할 것이다. 결국 피타고라스는 테트락튀스(1, 2, 3, 4)와 우주의 황므을 연관시킨 것이며,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곧 우주는, 음악적 협화음들의 경우처럼 정수 1, 2, 3, 4로 이루어지는 비율들에 의해서 표현될 수 있는 화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우주를 수적인 구조를 지닌 것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조화(화음)이다'라고 하는데,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주는 아름다운 것이고, 이는 그것이 조화를 가졌기 때문이며, 이 조화는 수적인 비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우주를 kosmos라고 표현하기도 한 것이다. (이기백, 2005)

형상 : 


▷ 대우주년 : 세계의 과정은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다. 만물이 영원히 순환한다는 학설 속에 우주가 조화잡혀 있다는 생각이 날카롭게 펼쳐져 있다. 이 사상은 또 다른 영역, 즉 심리학, 윤리학, 법철학, 국가철학에도 퍼져 있다. 피타고라스학파에게는 모든 것이 코스모스(kosmos: 조화가 이룩된 세계)이다. 

이렇게, 피타고라스학파는 밀레토스학파에 대한 필연적인 보충이다. 무엇에서 사물이 생겨나는가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 근본질료에서 무엇이 생겼으며, 또 이 생겨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피타고라스학파가 처음으로 질료를 형성하는 "형상의 권리"를 되찾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