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
이오니아학파에 비해 소피스트의 정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다른 대상(세계 대신에 인간)을 다뤄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a) 정치와 수사학
소피스트가 항상 말하는 덕(arete)은 덕(德)과는 상관이 없으며, 원래 뜻은 숙련이라고 번역됨직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숙련이다. 당시는 페리클레스의 제국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양 교육이 중요했고, 소피스트들이 바로 이 교육을 제공했다.
arete에 대해서는 논의가 추가로 필요하다.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작성할 것.
목표에 이르는 길은 '변론'이었다. 무엇보다도 변론은 확신을 주는 기술(설득: peitho)이어야만 했다. 바로 이 확신을 주는 기술이 소피스트의 arete이다. 이것은 "빈약한 사실을 보다 강한 사실로 만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다. 그들의 기술은 단순한 논쟁술(eristike)이다. 객관적인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이해관계가 중요하다.
b) 소피스트들의 세계관
소피스트학이 관심을 쏟은 것은 문제가 아니라 선전이었다. 진정한 철학적인 관심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적인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가에게도 세계관은 있듯이 그들의 세계관도 살펴봄직하다. 이 세계관의 배후에 간접적이나마 철학도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정신적인 태도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사상을 이끌어낼 수가 있는데, 그것은 회의주의적인 상대주의와 권력론이다.
▷ 회의와 상대주의
이오니아학파는 인간의 이성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철학을 했다. 하지만 이제 의문이 나타난다. 프로타고라스는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진리는 없고, 오직 주관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의견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인간은, 진리로 여겨지는 모든 것에 대해서 척도가 된다.
개인주의 : 여기서 말하는 인간이란 어떠한 인간인가? 여기서는 '개인으로서의 주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 생각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상대주의를 뜻한다. 따라서 정치적인 야심을 위해서는 매우 편리하다. 고르기아스 또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의 세 가지 명제에서 더 이상 날카롭게 표명할 수 없는 회의주의를 보게 된다.
규약(nomos) : nomos와 physis 사이의 대립 속에서 우리들은 구체적인 상대주의를 보게 된다. 고대의 nomos는 신들과 인간들을 제한없이 어디에서나 속박하는 가장 거룩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피스트는 nomos가 영원하지도 않고 보편타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규약에 의해서 생겨나며, 합의에 의해서 존속된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nomos와 physis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은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안티폰은 nomos를 위반해도 좋지만, 다만 아무도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국가적인 구속도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한다. 알키다마스는 노예들도 평등하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종교적인 규범도 파괴된다. (프로타고라스, 프로디코스, 크리티아스)
자연법 : 그런데 자연적으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 소피스트들은 일종의 '자연적인 정의'도 알고 있었다. 안티폰은 nomos와는 달리, 누가 보느냐와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우리들과 더불어 성장해 온 한 가지의 법률"을 억지로 침범할 경우 반드시 화를 입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피스트들의 자연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이다. 영원히 타당성을 갖는 '신의 불문율(자연법)'인가? (히피아스) 아니면 그 배후에 감춰져 있는 것은 법률에 대해서 게으름을 피우는 태도(예거)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가? 이 태도는 당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시대에 뒤떨어지고 모순 투성이가 된 여러 규정에 진력내는 것이고, 당파의 자의가 아니라 자연의 의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안티폰은 자연적인 것을 유익한 것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자연법이 본질적으로 욕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권력 사상
이 권력 사상은 칼리클레스와 크리티아스한테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칼리클레스는 강한 자가 약한 자보다 많은 갖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주장한다. 윤리와 법률은 약한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명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정말로 힘 센 자가 나타나 모든 규약을 폐기하고 호화로운 군주의 생활을 한다. "이 때에야 비로소 날 때부터의 의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법은 자연'법'이 아니라, 그냥 '자연'일 뿐이다. 그리고 개인주의요 자연주의다. 왜냐하면 자연을 넘어선 이념적인 구속은 없고 오직 욕망과 본능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크리티아스에게서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세계관을 위해 발전사적인 이론을 전개시켰다. 그들의 이론은 순전히 과거의 것만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을 우롱할 수 있다.
저자는 소피스트들의 이론이 언어를 세련되게 하고, 휴머니즘 등에 근본적인 공헌을 했다는 의견에 반대한다.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하지만, 이럴 때 기만과 겉보기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따라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하는 것을 알기 위해선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순수한 철학이 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소피스트들은 겉보기와 말을 본질과 존재보다 더 중요하게 다뤘고, 따라서 순수하게 철학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일은 다음 시대에, 즉 아티카 철학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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