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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고대철학, 제2장 아티카의 철학 -Ⅰ. 소크라테스와 그 학파

소크라테스와 그 학파

A. 소크라테스 (470-399)

그는 소피스트의 학문을 극복한 사람이다. 그의 삶과 말 속에서 밝혀지는 것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고의 중심이 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라도, 진리와 가치가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인간이다. 그는 일종의 살아있는 철학을 했다. 사람들은 거듭해서 철학적인 것에 관한 말을 했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붙들고 늘어져서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증명하고, 근본적인 전제들과 일치하는지를 계속해서 물었다. 이렇게 스스로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한다는 것을 자각시키는 기술을 논박(elenchos)라 한다. 이 기술은 착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반성하고, 새로운 통찰을 낳게 하는데, 이것을 산파술(maieutike)이라 한다. (또한 산파술은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윤리적인 가치들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이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유도하여 확인시켜주는 것"(박종현)이라는 의의도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잠언을 자기 나름대로 강조한 것도 인간이 지닌 이성의 능력에 대한 자각과 함께 이성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것을 강조한 것이니, 그렇게 되었을 때에야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다울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성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순히 '의견(판단: doxa)'에 불과한 것을 '지식(episteme)'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용도로 이용되는 절차가 바로 '논박(elenchos)'이다. (박종현)) 두 단계, 즉 논박과 산파술을 합해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dialektike)'이라 한다.

우리들이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알려고 할 때 문제되는 근원적인 사료는 크세노폰,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다. 사료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느 것에다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그 모습은 각기 특징 있는 얼굴을 가지게 된다. 아마 역사적인 소크라테스에 관한 절대적인 확실성은 갖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파고들고 사료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봄으로써, 그의 사상과 의도에 관한 조화로운 모습을 그려내는 시도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소크라테스의 전체적인 사상과 행위가 향하는 두 가지 핵심, 즉 '지식의 문제''가치의 문제'를 끄집어 낼 수 있다. 


a) 앎

▷ 보편개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 문제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위치를 두 가지로 간결하게 요약한다. 그것은 "귀납적 논의(epaktikoi logi)""보편적인 정의(horizesthai katholou)"이다. (전자는 보편개념을 이끌어내려는 소크라테스의 목적의 출발점이고, 후자는 그 목적의 도착점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귀납적 논의'를 귀납법과 귀납적인 증명(귀납법과 귀납적인 증명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으로 보려고 했지만, 귀납법을 합리론과 선천주의에 대한 적대개념이라고 보는 한 소크라테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히는 것처럼 매우 소박한 것이다. 우리들이 인식을 할 때는 구체적인 사례에서 출발하여 이 개별적인 사례의 독자적인 성질을 연구하는데, 이때 우리는 항상 동일한 것에 부딪히고 똑같은 특성을 띠고 있는 것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이것을 보편개념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epaktikoi logoi를 보편개념을 이끌어내는 사고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얻은 보편적인 형상(본질적인 특성: eidos)을 가지고 현실과 삶을 생각하는데, 여기서 그의 horizesthai katholou가 성립한다. 이것은 보편자의 도움을 받아 개별적인 것들의 윤곽을 그리고 규정하는 것이다. 


▷ 개념과 현실

그는 냉철하고 퇴색된 도식적인 사상이 갖는 보편적인 유형을 가지고 세계를 파악한다. 이에는 두 가지 커다란 이익이 있다. 첫째로, 이러한 인식은 심화된 인식이다. 보편적인 것은 부차적인 것이 아닌, 늘 한결같은 것이므로 본질적인 것이며, 무엇을 무엇이게끔 해주는 바의 것이다. 둘째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보편개념 안에서 일종의 확실한 앎을 갖게 된다. 그것을 생각하는 주체에 좌우되지 않고 항상 똑같은 것으로서 나타나는 지식의 내용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것은 기분이나 입장에 따라 발명된 것이 아니라, 경험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극복한다.


▷ 인식론

그는 이미 논한 것처럼, 지식의 형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오니아학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재료였다. 이와 반대로,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순수하고 확실한 앎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적인 문제였다.


b) 가치

앎의 문제와는 반대로, 가치 문제와 관련해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내용적인 측면이다. 그는 내용상으로 보아 "선(훌륭함, 좋음: agathon)", 특히 윤리적인 선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가치의 문제(무엇이 좋은 것이냐?)가 곧 윤리(무엇이 선이냐?)의 문제이다.

책에서 '선'으로 번역한 agathon에 대해서도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선'은 우리에게는 먼저 윤리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와는 달리 그리스어의 'agathon'은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좋음(또는 훌륭함)'의 의미가 일차적임을 유의하자.

▷ 복리도덕에 대한 반대

소크라테스는 먼저 한 가지 부정적인 작업을 해야 했다. 즉, 윤리적인 좋음에 관한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시대에 가치문제가 시작되었는데, 이 문제는 좋음(agathon), 훌륭함(arete), 행복(eudaimonia)의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개념들은 세 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목적에 알맞은 유익한 것으로서의 '공리주의적'인 뜻이나, 욕망에 알맞은 것으로서의 '쾌락주의적'인 뜻, 또는 군주적인 인간의 우월성과 권력으로서의 '자연주의적'인 뜻으로 말이다. 공리주의와 자연주의는 최종적인 대답이 되지 않는데, 이익과 권력은 그 위에 있는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목적이란, 그의 시대에 있어서는, 특히 소피스트와 대중의 도덕에 있어서는 쾌감을 가져다주는 바의 것이었다. 따라서 남는 것은 행복주의(쾌락주의)이므로 소크라테스는 이 행복주의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대결은 『고르기아스』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칼리클레스에게 좋은 쾌락과 나쁜 쾌락을 구별하게 함으로써 행복주의마저 극복한다. 쾌락을 넘어서서 좋은 쾌락과 나쁜 쾌락을 구별짓는 새로운 기준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 앎으로서의 선

그렇다면 이 새로운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앎(지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모든 덕은 통찰(앎) 안에서 성립된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니코마코스 윤리학 6권 13장). 혹자는 윤리적인 가치개념을 이렇게 해석한 것을 주지주의라고 했다. 하지만 소위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는 결코 현대적인 뜻의 주지주의가 아니며, 그리스의 기술(techne) 사상의 표현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인 가치문제를 논할 때는 항상 기술의 영역에서 보기를 끌어낸다. 기술에 있어서는 앎이 오직 전부다. 이해하는 것이 곧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앎과 가치가 일치한다. 이렇게 해서 능력 전체가 지적인 측면으로 옮겨진다. 윤리학에 있어서의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는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다. arete를 배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arete가 있는 사람이며, 그것을 실천한다. 따라서 arete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을 배경으로 삼아 "아무도 자진해서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는 유명한 명제가 그 뜻을 가지게 된다. 만약 기술에서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면, 그 이유는 항상 필요한 지식과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이 없을 때에는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복주의?

소크라테스의 윤리적인 가치개념은 기술(techne)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관계가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기술적인 가치개념은 목적을 달성하는 데 쓰임새가 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크세노폰도, 플라톤도 그렇게 전하고 있다. "쓰임새가 있을 때, 우리는 가치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용어의 억압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윤리학은 공리주의로 전락하게 되고, 특히 크세노폰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복리의 도덕과 비슷해져 버리고 만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복리의 도덕welfare morality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약 복리의 도덕을 관습대로 행복주의라고 부르려 한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 단, 동시에 행복주의는 복리의 도덕이라 선언할 때에만 그렇다. 왜냐하면 행복(eudaimonia) 개념은 원래 여러 뜻을 가지고 있고 가능한 유리적인 원리들 중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주의라기보다 쾌락주의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왜냐하면 공리주의와 복리주의 도덕에서 행복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아무리 최고의 선(summum bonum)에 관해서 말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욕망과 성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욕망과 성향을 윤리적인 원리로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공리주의자, 행복주의자, 특히 때로는 쾌락주의자로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그의 윤리학의 근본개념이 기술적인 사고의 분야와 자기의 개념세계에 뿌리 박고 있는 결과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이와는 다른 것으로서 현실적인 윤리의 순수한 이상이었다. 이렇게 해서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그의 인격과 윤리적인 개념의 세계 사이에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것이 바로 플라톤을 끈질기게 자극했다. 기술, 목적달성에 쓰임새가 있는 것, 성향 및 쾌락 등의 개념은 스승의 생활과 의중에 있던 이상주의를 드러내는 데 알맞은 것이었을까? 모든 것들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관념의 세계가 개척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소크라테스 윤리학의 이러한 결함을 인지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플라톤의 사고를 돋보이게 하는 문제의 배경 전체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강성훈 교수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의 한계를 인지하고 극복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SSQ8YI7v8U)

박종현 교수는 소크라테스의 이성(logos)을 확장시켜 지성(nous)을 강조하고, 이에 맞춰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자신의 변증법으로 심화시킨다. (헬라스 사상의 심층, pp.132-)


B. 소크라테스학파

소크라테스학파를 살펴보면 소크라테스는 일정한 학파의 교의(도그마)를 남겨주려고 했다기보다, 오히려 철학하는 것 자체를 자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들은 윤리적인 가치에 관한 그의 주장이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고, 최종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 메가라학파

창시자는 메가라의 에우클레이데스(Eukeides von Megara, 450-380)이다. 그는 엘레아주의와 소크라테스주의를 종합하려고 애썼다. 그에게 있어서는 엘레아학파가 주장한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 한 가지의 존재가, 소크라테스가 항상 말하고 있던 선(agathos)이다. 이러한 생각에 의해서 소크라테스주의는 형이상학으로 뚜렷하게 전향한다. 

에우불리데스, 디오도로스 크로노스, 스틸폰 등은 메가라식의 변증법을 발전시켰다. 이 변증법은 점차 내용도 없이 꼬치꼬치 캐고 드는 논법으로 발전하여 궤변으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 중 가치 있는 논증도 있었다. 디오도로스 크로노스의 "중요한 논증". (근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학파는 또 소크라테스의 한 가지의 중요한 사상인 자족의 이상도 보존하고 있다. 이 이상이란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덕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상인데, 스틸폰은 이것을 존중하여 스토아학파에게까지 전해주었다. 왜냐하면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Zenon)은 스틸폰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b) 엘리스-에레트리스학파

파이돈(Phaidon)이 창시한 학파다. 그에게 있어서는 철학이 영혼의 구원이요, 참된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메네데모스(Menedemos)에게 있어서는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적인 용어들이 모두 되살아나 있다.


c) 키니코스학파

▷ 안티스테네스

키니코스학파가 제일 중요하다. 우두머리는 아테네의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von Athen, 445-364)였다.

키니즘 :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였던 것은 자족의 이상이었다. 덕만으로 충분했고, 외적인 재산을 극도로 경멸했다. 이러한 생각이 문화와 학문과 종교와 민족적인 단결과 특히 습관과 예의 등을 경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그들이 외적인 사물들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행동한 것이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적인 강함'을 함양하는 데(헤라클레스가 이미 본보기를 보여주었다고 여겼다)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스토아학파의 현인의 "참아라, 그리고 (쾌락을) 버려라(sustine et abstine)"라고 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길이 직접 트인다. 이렇게 명백한 주의주의적인 태도가 "그렇게 생활하는 자가 현자요, 꿰뚫어 보는 자요, 아는 자다"라는 주지주의의 말로 표현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도 소크라테스의 용어가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과 사상을 어떻게 구별해야만 하는 가 하는 것을 또 보게될 것이다.

감각론 : 안티스테네스는 인식론적으로는 감각론자이며, 형이상학적으로는 유물론자였다. 그에게는 보편적인 개념이니 이데아니 하는 것은 속이 텅 빈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유물론자 : 그는 동시에 유물론자였다. 플라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은 "물체와 존재는 하나요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매우 활발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소피스트).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를 감각론와 유물론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키니코스학파의 이러한 유물론은 뒤에 와서 스토아학파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 디오게네스 (Diogenes von Sinope, 324에 사망)

그는 사상에 의해서라기보다, 특이성에 의해서 주목을 끌었다. 그는 자족의 사상에 충실하기 위하여 거지가 되어 통 속에서 살았다. 그는 문화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역사를 등지고 살았다. 

▷ 크라테스 (Krates von Theben)

그는 고향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이었으나, 덕을 높이 숭상하여 소유물을 몽땅 다 버리고 키니코스학파에 가입해서 거지생활을 했다.


d) 키레네학파

키레네학파는 키니코스학파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창시자는 키레네의 아리스티포스(Aristippos von Kyrene, 435-355)이다.

이들의 바탕은 쾌락주의다. 가치는 오로지 쾌락에만, 특히 신체적인 감각에서 느낄 수 있는 쾌락에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쾌락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치를 근거지우는 문제에 있어서 명확한 해답을 얻어내려고 이런 학설을 주장했다. 그에게 의심할 여지 없는 가치라고 생각된 것은 생각 속에서만 근거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 느끼는 것이었다. "체험될 수 있는 것만을 우리들은 꿰뚫어 볼 수 있다."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감각적인 상태이고, 이 상태란 그에게 있어서는 쾌락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쾌락을 프로타고라스처럼 완전히 주관주의적 · 감각론적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자신 안에 가치의 척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낀 것을 참되고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아이테토스 178b)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서로 다르게 반영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여러 사상의 방향들 중 어떤 것이 스승의 원래적인 본질과 의도에 꼭 들어맞는 것일까? 힐쉬베르거는 그것이 바로 플라톤의 사상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