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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서양과학사

[W3] 천문학과 우주론: 독서 노트

과학사통론1 - 3주차 독서 노트 (2018. 3. 16)

천문학과 우주론

조장현

 

Robert Westman, “Two Cultures or On? A Second Look at Kuhn's The Copernical Revolution,” Isis 85 (1994), 79-115

H. Darrel Rutkin, “Astrology”, Katharine Park, Lorraine Daston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Science. Volume 3: Early Modern Scienc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p. 541-561.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홍성욱 편역, 과학고전선집,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pp. 1-46.

André Goddu, Copernicus and the Aristotelian Tradition: Education, Reading, and Philosophy in Copernicus's Path to Heliocentrism (Leiden: Brill, 2010), pp. 325-386.

Ernan McMullin, “Kepler: Moving the Earth”, The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 of Science 1(1) (2011), pp. 322. 




H. Darrel Rutkin, “Astrology”, Katharine Park, Lorraine Daston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Science. Volume 3: Early Modern Scienc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p. 541-561.

 

점성술은 17-18세기 동안 자연지식의 영역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14세기만 해도 각 교육 분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부터 계몽 시기까지 자연철학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점성술의 역사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1500년대 점성술의 위치. 당시 점성술은 수학적 분과뿐만 아니라 자연철학적인 분과와도 결합되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약학, 우주론, 기하광학 등)

하지만 점성술의 이러한 권력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있었다. Pico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은 주변적인 것에 불과했고, 점성술은 계속 융성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TychoKeplerPico의 영향을 받아 점성술의 체계를 개편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Tycho는 점성술 예측이 빗나가 있는 부분을 발견하고, 예측을 관측을 토대로 더욱 정교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Tycho가 관측을 시작한 동기가 부분적으로 점성술에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한편, 점성술은 궁전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주관하는 사업 중 하나였다.

심지어 과학혁명의 주역들도 점성술을 연구했다. 갈릴레오와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보일이 그 예이다.

하지만 점성술은 결국 18세기 동안 쇠퇴했다. 저자는 이 과정을 분과 편재의 변화와 그것을 반영한 대학의 커리큘럼을 통해, 그리고 ephemerides를 통해 보이고 있다. 16-17세기 동안에는 비록 점성술 교과를 교과서에서 빼는 등 배제하는 작업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성술은 계속 그 명을 이어갔다. ephemerides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8세기가 되자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연철학 커리큘럼에서 점성술이 배제되는 양상도 복잡하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On the Revolution of the Heavenly Spheres, 1543)

 

1543년에 뉘른베르크의 Ex officina Henricpetrina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출판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코페르니쿠스는 1514년경 지동설을 담은 Commentariolus이라는 미출판 원고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후 그는 종교와의 마찰을 우려해 계속해서 출판을 미루었다. 그런데 후배 천문학자 레티쿠스(Rheticus)1539년에 코페르니쿠스를 방문하여 지도를 받고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설명한 개요서 Narratio Prima를 출판했고, 이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를 설득하여 책을 쓰도록 했다.

 

1. 오시앤더의 서문

오시앤서의 서문에서 우리는 당시 천문학의 위상을 일별해볼 수 있다. 천문학은 자연철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혹은 다른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천체운동의 진정한 원인은 천문학자의 추론으로부터 얻을 수 없고, 그들은 단지 원인에 대한 가정을 가지고 기하학적 원리로부터 관측과 같게 계산될 수 있도록 가설이나 원인을 편의에 따라 고안해 내는 것이 천문학자의 일이라는 오시앤더의 언명에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천문학으로부터는 어떠한 확실성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이 언명에서부터 천문학이 자연철학에 비해 낮은위상을 가졌다는 함의를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함의는 당시 천문학자와 자연철학자의 사회적 위치, 당시 식자층의 학문에 대한 인식 등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교황 바오로 3세에게 드리는 서문과 헌정

코페르니쿠스의 서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 번째로, 코페르니쿠스가 교황에게 자신이 왜 태양을 중심으로 한 우주 체계를 설파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부분이다(9-10). 수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 즉 천구운동의 구성에 대한 지금까지의 수학이 확실성을 결여한 상황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다른 방식으로 정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우선 그들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확신이 없어서 1년의 크기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측·증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주 체계 이론을 만드는 데 있어서 회전과 겉보기 운동에 대한 단일한원리·가정·증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더욱이 우주의 형태와 그 부분들의 정확한 대칭성을 발견하거나 추측할 수도 없었다. (이 부분은 아마도 제1주에서 배운 음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두 번째로, 철학자들이 어떤 확실한 우주 체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11). (그렇다면 당시에 여러 우주론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인가? 더 공부하며 이에 대한 답을 찾아봐야겠다.)

 

3. 1권의 서론

코페르니쿠스는 서론에서 천문학이 최고의 선함에 대한 사색으로 이끌어주며 여러 사회적 유용성을 갖는다고 천명한다. 그리고 기존의 체계에 대한 한계로 원리와 가정에 대해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일한 계산의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4. 1권의 내용

우주와 지구는 구형이다. 지구가 구형이라는 명제와 관련하여 당시에 땅과 물이 어떻게 구형을 이룰 수 있는지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물과 땅의 무게중심, 월식 현상에 대한 논의로 지구가 구형임을 입증한다.

천체의 운동은 원형이고, 다양한 구 또는 궤도에 의해 많은 운동이 존재한다(일주운동, 반대 공전). 하지만 반대공전과 같은 운동들은 원형이거나, 많은 원형의 혼합이다. 왜냐하면 주기적이며, 따라서 원운동에 의해서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불규칙한 운동이 단일 원운동에서 일어난다면 그 불규칙성은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인데, 우리의 지성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천체의 운동에 관한 확실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지구의 운동이 원형인지와 우주에서 지구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운동은 상대적으로 관측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에 일주운동을 부여할 수 있다. 행성들이 지구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지구의 중심은 행성 궤도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것이 어떤 것에 가까이 갔다가 멀어지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일주운동 외의 또 다른 운동을 지구에 부여해도 그리 불합리하지는 않다.

한편 지구의 크기는 천구에 비하면 매우 작다. 이는 지평선이 천구를 이등분한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지평선은 구의 대원인 황도를 언제나 이등분한다. 그러나 구의 대원을 이등분하는 원도 역시 대원이므로, 지평선은 대원이고 그 중심은 황도의 중심, 즉 천구의 중심임이 명백하다. 그리고 지구의 중심을 지나는 선과 지표면을 지나는 선은 다르지만, 그들은 지구에 비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마치 평행선과 같고 하나의 직선으로 보일 것이다. 따라서 천구는 지구에 비해 막대하게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상을 알 수 없고, 이 논의로부터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음을 증명할 수 없다.

그리고 고대의 철학자들처럼 무거운 것은 중심으로 움직이려 한다는 식으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정지해 있다는 주장도 불충분하다. 또한 그들은 운동과 운동의 본성을 통해서 증명하려고 노력(아리스토텔레스)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불충분한 주장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주의 유·무한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우주 대신 지구에게 지구의 형태에 적합한 운동을 부여하는 것을 왜 주저해야 하냐는 것이 코페르니쿠스의 의문이다.

그렇다면 지구에 하나 이상의 움직임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지구가 행성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행성의 운동은 불규칙하게 보이고 행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변한다. 이것은 그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상에 있다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구가 모든 회전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연주운동을 생각해보면 태양의 운동을 지구가 한다고 해도 똑같은 황도 12궁과 항성들의 출몰을 보게될 것이다. 그리고 행성들의 움직임도 지구의 움직임으로 만들 수 있다. 결국, 태양이 우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한편 금성과 수성의 질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도 지구가 행성들의 순서와 궤도에 관한 중심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지구의 중심과 달을 포함한 전체가 다른 행성들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 주위를 1년에 1회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태양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성의 운동은 너무나 많다.

이제 그것을 가설로서 인정하고, 지구의 운동 중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지구의 자전, 지구의 중심이 1년 동안 움직이는 운동, 그리고 적위의 운동이 있다. 이러한 운동들로 인해 우리는 마치 지구의 중심이 우주의 중심인 것인 양, 태양이 황도 상에서 비스듬히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필자는 글을 읽으면서 코페르니쿠스의 논의, 특히 기하학을 사용한 논의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당시 학자들이 대학에서 어떤 책으로 공부했는지 알아보고, 그것을 들여다보아야지만 코페르니쿠스의 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참고할 서적은 다음과 같다.

알파르가니, <천문학의 기초>

사크로보스코의 요하네스, <천구>

익명의 저자, <행성이론(Theorica planetarum)>

Mathematical astronomy in Copernicus's De revolutionibus / N.M. Swerdlow, O. Neugebauer.

 

 

<흥미로운 점들>

플라톤주의적 사상 : “장인”(11), 최고의 선함에 대한 사색, 법률 인용(15), 구형 우주

중력 또는 무거움 : 각 부분들에 부여된 어떤 자연적인 욕구

 


André Goddu, Copernicus and the Aristotelian Tradition: Education, Reading, and Philosophy in Copernicus's Path to Heliocentrism (Leiden: Brill, 2010), pp. 325-386.

 

저자는 코페르니쿠스를 아리스토텔레스 전통 속에 위치시킨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견해를 채택하고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곳에 그 견해를 적용시킨 인물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1496년과 1509년 사이에 동심천구 모델과 주전원-주축원 모델이 원만을 사용하여 정합적인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제1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왜 그가 지구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세 가지 주제를 살펴봄으로써 어떻게 지구중심설에 대한 비판이 코페르니쿠스를 그의 자연철학에 대한 원리로 이끌었는지 알 수 있다.

첫 번째로, 천체의 운동이다. 지구는 구형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구형의 물체는 자연적으로 원형 운동을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서 코페르니쿠스의 "according to nature"라는 언명은 가능적인 운동을 의미할 뿐이고, 모양이 운동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태양과 별들의 천구는 움직이지 않으므로)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통적인 견해에 편승한 듯하다. 천구 고리orb에 의한 운동?)

두 번째로는, elemental bodies의 운동이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가 그의 태양중심설을 지지하기 위해 고대의 권위를 빌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에 나오는 비정합성과 모호함을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elemental bodies의 운동에 대한 정합적인 이론 체계를 정립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지구가 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세 번째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유한한 태양중심론을 기반으로 한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서 자연철학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주의 구조에 대해서, 자연철학은 천문학과 수학보다 부차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한편 코페르니쿠스는 이심점 모델을 거부했는데, 관련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rnan McMullin, “Kepler: Moving the Earth”, The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 of Science 1(1) (2011), pp. 322.

 

1. Two Astronomies

그리스 천문학이 이슬람에서 발전하면서 중요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천구 모델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이심원 모델의 비정합성이라는 문제이다.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둘을 다른 종류의 작업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0-12세기 동안 문제는 더욱 불거졌다. 양편의 대립을 다음과 같은 두 이슬람 학자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이븐 알 하이탐(Ibn al-Haytham: Alhazen, 965-ca.1040)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과 이심원을 사용하여 행성 체계의 실재적인 구조를 알아내려 시도했다. 그리고 이븐 루시드(Ibn Rushd: Averroes, 1126-98)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수학적인 형식formalism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적 원리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논쟁은 이후 서유럽에서도 미결정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로저 베이컨은 1260년대에 알 하이탐의 방법을 세부적으로 논했다.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체계와 감각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며 아리스토텔레스 편에 섰다.

 

2. Copernicus

코페르니쿠스는 당시 자연철학자의 주장과는 달리 자신의 우주 체계가 현상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실재를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우선 그는 별들의 밝기와, 지구 및 태양과 별들 사이의 거리를 연관 지음으로써 태양중심설을 주창한다. 태양이 중심에 있지 않다면 그러한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성들의 역행운동도 지구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쿤은 그의 초기 저서에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하며 둘 중의 선택은 취향의 문제matter of taste라고 주장했다. 단지 전자가 후자보다 더 심미적aesthetic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하모니와 질서를 언급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자로서 하모니와 질서를 심미적으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단순히 현상을 구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설명력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는 천체의 운동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모호하지만, 그는 외부의 힘이나 내재적인 지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KathleenPeter에 의하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도 천구 고리orb에 해당하므로, 아마도 전통적인 관점에 그대로 편승하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3. The Mysterium Cosmographicum

이후 50년 동안 코페르니쿠스의 독자들은 대체로 오시앤더의 서문에 따라 그의 우주 체계를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에 속한 것으로, 즉 계산적인 도구로 보았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1580년대에 이미 코페르니쿠스 우주 체계가 그보다 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태양에 의한 운동이라는 그럴듯한 물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Mysterium Cosmographicum (1596)은 코페르니쿠스의 De revolutionibus가 계산적인 도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변호하기 위한 첫 번째 저작이다. 케플러는 브라헤의 혜성 관측 자료를 근거로 행성 나르개planetary carrier의 개념을 버리고 행성 운동의 원인을 태양으로 돌린다. 이러한 주장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케플러는 이미 새로운 코페르니쿠스 우주 체계를 삼위일체가 구체화된 것으로 보았다. 케플러는 행성이 태양의 anima motrix 때문에 거리에 비례해서 주기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또한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행성의 역행운동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 체계가 현상을 성공적으로 구제한 작업은 단지 우연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우주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선택하면 플라톤적인 다섯 입체 도형이 천구 사이에 딱 들어맞는다고 주장하며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변호했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케플러의 일련의 저작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변호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4. Apologia pro Tychone contra Ursum

티코는 케플러에게 니콜라우스 우르수스를 논박하는 글을 쓸 것을 부탁하며 자신의 관측 자료를 공유한다. 하지만 티코와 우르수스 모두 사망하여 글을 완성하지도 출판하지도 못했다.

우르수스는 행성의 질서의 참된 설명을 제공해야 하며, 수학적 천문학은 예측의 수단이라는 기존의 기조를 지킨다. 그는 두 가지 방식으로 비판을 가한다. 하나는 수학적 천문학에서 사용되는 두 가지 기하학적 도구(주전원, 이심원)에 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코페르니쿠스와 티코 천문학에서의 전제는 어떠한 참된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전제들도 똑같은 목적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플러가 바로 이러한 비판을 다시 재반박하는 일을 했다. 이러한 논쟁에 논고로 답하는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우선 케플러는 두 번째의 비판에 천문학자들은 그들의 전제를 물리적으로 고려하여확증할 수 있다고 답했다. , 충분한 시간 동안 관측된 결과를 통해 어느 때건 현상을 구제할 수 있는 전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하학적인 전제와 천문학적인 전제를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현상을 구별하는 것이고, 후자는 거기에 더해 물리적 고려로 확증할 수 있는 것이다. 케플러는 이제 그의 Astronomia Nova에서 ‘physical'한 고려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5. Astronomia Nova, 1608

케플러는 새로운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이전 천문학 전통과 단절을 선언했다. “화성의 실제 물리적 궤도orbit는 무엇인가? 2차원 관측 결과를 가장 잘 표상하는 기하학적 construnction은 무엇인가? 그는 궤도를 현상 구제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현상 자체로 본 것이다. 이제 수학적 천문학과 물리적 천문학 사이의 틈바구니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관측 결과와 부합하는 수많은 궤도 중에서 개연적인 물리적 설명에 적합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것은 단순한 귀납이나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선 원인을 탐구해야만 했는데, 이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가 잠정적으로 제안한 원인에 대해 고려해 보아야 한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우주 체계를 통해 천체의 운동 원인이 태양에 있다고 추측했다. 원인의 효력virtue이 거리에 따라 감소한다고 생각함으로써 행성들이 빨라지고 느려지는 이유에 답했다. 이러한 개연적인 원인 설명은 관측 자료와 부합하는 여러 기하학적 도형에서 참된 궤도real orbit을 선택하는 데 본질적인 역할을 했다.

궁극적으로, 천체 나르개로서의 천구 개념이 사라졌으므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적 원인이 필요하다는 그의 확신이 이심원이나 주전원 같은 수학적인 도구를 포기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타원형 궤도는 거리에 따라 변하는 태양의 효력virtue에 대한 직관에 의해 확증되었다.

 

6. A Celetial Physics

그렇다면 케플러는 태양의 효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그것을 마치 빛처럼 공간을 지나서 물체에 영향을 주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작용이 시간과 공간을 따라 전파되므로 기하학적인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케플러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무거움(중력)을 물체의 내재속성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물체는 자연적인 관성inertia, 즉 그것들의 부피(bulk: 크기)에 비례하는 운동의 저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물체가 움직이기 위해선 지속적인 힘이 가해져야만 한다. 케플러는 이런 측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였던 것이다. 아무튼, 운동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행성들 각각의 주기는 태양과의 거리뿐만이 아니라 그것들의 크기 때문에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태양에서 방사되는 힘이 어떻게 행성들을 운동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여기서 그의 관성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체가 운동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힘이 작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케플러는 태양을 회전하는 것으로 보고, 태양에서 나오는 비물질적인 종류immaterial species가 소용돌이를 구성함으로써 행성을 나르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케플러는 인력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에게 어떤 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더 이상 경향tendency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인력 개념은 서로 친화성이 있는 것들 끼리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계가 있었다. 인력의 강도는 잡아당기는 물체의 크기bulk에 비례했다. 지구는 달을 잡아당길 수 있었지만, 행성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왜냐하면 행성은 지구와 본성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행성들은 계속 태양으로부터 거리를 바꾸는 것일까? 소용돌이로는 이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단 하나의 원인인 태양은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영향일 미쳐야 했다. 길버트가 지구를 하나의 자석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각 행성들도 하나의 자석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케플러는 이런 식으로, 인력과 척력을 사용하여 행성들의 거리가 바뀌는 현상을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행성 자석의 극이 계속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았을 때 타원 궤도를 그린다는 사실로부터, 수많은 타원형oval 원으로부터 하나의 궤도를 골라낼 수 있었다. , 단순한 귀납을 통해서나 관측 자료에 끼워 맞춰서 얻은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원 궤도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7. Moving the Earth

케플러는 지구를 움직이게 할 가능성이 있는 원인이 명백하게 있기 때문에, 지구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태양이 지구를 움직이는지, 지구가 태양을 움직이는지를 생각해 본 후, 그는 후자가 말도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 오직 가능성과 개연성만이 지구를 움직일 수 있게 했다.



André Goddu, Copernicus and the Aristotelian Tradition: Education, Reading, and Philosophy in Copernicus's Path to Heliocentrism (Leiden: Brill, 2010), pp. 325-386.

코페르니쿠스의 dialectic : '지구가 움직이냐/아니냐'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 틀 안에서 다른 요소들을 제시. 

[W4]에서 Peter Dear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인위/자연 구분 맥락, 인위 영역 속에서 논의를 진행시키려는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