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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

Jan Golinski, Making Natural Knowledge: Identity and Discipline

Chapter. 2: Identity and Discipline

The Making Of A Social Identity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은 다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까? 과학의 분과와 직업, 전문화, 과학 기관의 설립, 과학적 실천이 사회적 환경을 다시 형성하는 방식.

저자는 두 가지 시기에 주목한다. 첫 번째, 근대초 실험과학이 처음으로 시행되던 시기. 두 번째,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두 번째 과학혁명)에 수많은 분과와 기관이 현대적인 틀을 갖추었다고 여겨지는 시기.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은 머튼으로 대표되는 과학사회학적 관점과 무엇이 다른가?


<머튼의 과학사회학> (과학기술학의 세계 중 과학자 사회와 관련된 장 참고)

머튼은 과학의 인지적 내용과 사회적 문맥을 확고하게 나누는 것에서부터 그의 논의를 시작한다. 따라서 과학 발전에 개입하는 사회적 요소들은 상당히 제한을 받게 된다. 

그는 그러한 이분법을 고수하지만, 두 영역(외적인 영역과 내적인 영역)을 매개하는 요소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과학의 올바른 실행을 유지하는, 사회적으로 내재된 가치이다. 그러한 가치가 내재된 정도에 따라 과학의 발전은 그 발전의 정도 또는 방향에 대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의 인지적인 내용은 영향를 받지 않는다.

17세기 영국에서 청교주의의 영향이, 독립적인 과학 기관의 존재에 앞서 어떻게 자연 지식의 추구를 추동했는지를 보여줌. 그러한 기관이 자율성을 얻게 되는 점진적인 과정 기술. 과정을 거치면서 기관들은 과학의 진보에 필수적인 윤리적인 원리들을 내재화함. Thomas Gieryn은 이것을 머튼의 "postulate of institutional differentiation"이라 부른다.

이러한 도덕적인 원리들은 "규범(norms)"이라고 불림. 네 가지 규범들은 과학자들의 도덕적인 합의와 위반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분개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함. :

첫째, 보편성 규범. 과학적 지식의 타당성은 과학자의 귀속적 지위와 무관하게 비인격화된 정당화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둘째, 공유성 규범. 과학 지식은 공유되어야 함. 발견자들은 오직 영예와 기념에 의해서만 보상받을 수 있을 뿐, 사권에 의해서는 아니다.

셋째, 탈이해관계(또는 탈이해관계의 초월) 규범. 자기 권력의 심화나 의도적인 사기는 금지. 연구 주제를 선택함에 있어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강조하는, '과학 자체를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sake of science)'을 요구. 최근에는 연구주제 선택과정보다는 연구 수행이나 동료의 연구를 평가하는 데 이해관계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음.

넷째, 조직화된 회의 규범. 출처의 권위와 상관없이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해야 함.

이 네 가지 규범은 어떠한 사회 집단 개인의 "기질(ethos)"를 구성한다. 에토스의 원인은 역사적으로 다양하지만, 한 번 성립되면 개인들이 기관에 소속되며 그것을 배우게 되는 식으로 유지된다. 

differentiation postulate에 의하면, 기관은 문화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과학적인 에토스를 반영하면서 발생한다. 예를 들면, 왕립학회는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통로였지만, 이후에 신입회원에게 과학 활동을 유지하는 규범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관은 구체적인 실재가 아니었다. 특정한 기관의 특정한 국지적 특징은 과학이 수행되는 방식이나 생산물을 결정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에 머튼의 뒤를 이은 사회학자들은 에토스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일반적인 조건(보상 체계, 전문가에 의한 평가 구조)에 주목했다.

그들은 기관을 국지적이지 않고 보편적인 가치들을 집행하는 곳으로 보았다. 따라서 과학 형성에 개입하는 국지적인 요소와 특정한 지역의 물질적인 특징, 그러한 곳에 존재하는 이들 사이의 권력 분배같은 요소를 고려하지 못함. 하지만 그의 논의를, 그러한 국지적인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는 틀로서 기능하는 도구를 제공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머튼주의적인 과학사>

이러한 머튼적인 경향은 어떤 종류의 역사를 낳았는가? Joseph Ben-David의 『사회에서의 과학자의 역할, 1971/84』에서 살펴볼 수 있음.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행해진 활동이 '과학'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임. 과학이라는 것의 초역사적인 개념을 대가로 지불. 또한 과학이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자율성을 획득한 과정을 기본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머튼적. 머튼주의적인 "내적", "외적" 구별을 역사학과 사회학의 구별과 결합. (외적인, 우연적인 요소는 역사학이 다루는 것이고, 사회학은 체계적인 관계를 다룬다) 

따라서 그는 "과학 활동의 제도적인 사회학(an institutional sociology of scientific activity)"를 제안함. 가장 중요한 범주는 과학자들의 "역할(role)"이고, 그것의 탐구 목표는 역할의 변화를 좇는 것이다. 

'과학자'라는 용어는 19세기 초에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사회적 역할은 17세기 중반 영국에서 처음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함. 왕립 학회는 사심없는 경험적 연구의 목표를 처음으로 제도화하고 충분히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함. 그전에는 개인들에 의해서만 '과학자'로서의 소명이 강조됨. 벤-데이비드는 왜 이러한 현상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다룸.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휘그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음.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들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등은 그러한 '목적론적(teleological)' 모델에서는 대답할 수 없음. 또한 근대초 과학 기관의 발전에 대한 기술 또한 목적론적이라 할 수 있음. 무엇이 17세기 유럽인들 자신을 처음으로 과학자로 여기게끔 했는가라는 질문에 여러 가지 점진적인 단계를 내놓는데, 모두 왕립 학회로 이어진다. 

그는 머튼주의적 규범이 왕립 학회에서 작동되었다고 여긴다. 17세기 유럽의 더 넓은 사회적 요소는 그러한 이상적인 것들이 잘 받아들여지게끔 하는 정도 이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사회의 역할은 과학자 공동체에 자율성을 허락하는 것이다. 이러한 머튼주의적 자율성 개념은 내적인 영역과 외적인 영역 사이의 경계가 과학자 공동체 정체성의 존재로부터 직관적으로 나오는 것이라 가정한다. 따라서 머튼주의적 접근에서는 '과학'의 정의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는 회원에게 실험적 방법을 취하도록 하는 기관의 형성과 함께 발생. 벤-데이비드의 견해에 의하면, 그럼으로써 이론적인 논쟁은 사라지고 공동체의 연대는 강화된다.



<섀핀과 섀퍼의 작업과의 차이점>

첫째, 벤-데이비드는 실험적 방법에 대한 당대의 평가에 대한 복잡한 구도를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단순화 해서 받아들인다. 섀핀과 섀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주장함. 홉스는 철학적인 학설은 오직 논증이나 증명에 의해서만 입증이 가능하고, 실험 기구의 조작을 통해서는 확실성을 담보한 자연 지식을 만들지 못한다고 주장. 섀핀과 섀퍼는 논쟁을 연구함으로써 목적론적 구도에서 벗어남.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을 미리 정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홉스와 보일이 근원적인 원리에 대해 논쟁을 벌인 바로 그 지점에서 부터 시작. 

둘째, 머튼주의적 내적/외적 구별 해체. 문제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과 그 외의 영역 사이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가 역사적으로 그려지고 그 사이의 상호 교환이 이루어진 방식을 검토하는 것. 보일은 실험적으로 산출된 "사실"과 형이상학적 "의견"을 구분했는데, 그는 이 구분을, 실험 도구를 조작하는 기술과 말로 설명하는 방식, 청중 교육 등을 함으로써 뒷받침했다. 이것은 수사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이었지만, 실험적인 과학적 방법을 수사, 정치적인 요소와 분리시키는 데 성공했다.  실험적 방법과 같은 성취가 어떠한 문화적인 도구를 사용해서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 즉, 요점은 내부와 외부 사이의 경계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설명이 필요한 구성된 개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

이와 비슷하게,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은 머튼주의적 규범을 역사적인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다. 

규범의 해체는 과학적 기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줌. 기관 자체는 구성물, 즉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과 협상, 사회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더 큰 영역의 권력의 결과로 여겨져야 한다. 구성주의는 국지적인 제도 환경과 그것을 특징짓는 특정한 실천에 주목하는데, 여기서 그러한 기관들은 개인의 행동을 결정짓는 확고한 요소가 아니다. 개인들은 구체적인 기관에서 그들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목적 또한 다양하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결과는 무엇인가? - 초기 왕립 학회에 대한 최근 연구를 중심으로>

규범적 가치를 담고 있다고 여겨져 왔던 문서의 문맥을 이해하는 방식. 방법론적 약정은 규범으로 직접 이해될 수 없음. 다양한 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아젠다를 추구하고 그들 자신의 지위에 대해 협상함. 논쟁이 벌어지면 공유되던 규범은 한계를 보임.  대신 그 규범들은 다야한 목적에 적합한 수사적 무기가 됨.

Paul B. Wood (1980) 은 Sprat의 History(1667/1958)와 같은 변론의 성격을 띤 문헌을 읽는 방식에 대해 지적. 텍스트를 어떠한 프로그램에 입각한 규범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기 위해선 그것이 쓰여진 상황을 고려해야 함. 

Robert Iliffe (1992) 은 왕립 학회에서의 "공유성" 규범의 영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 로버트 후크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사이의 'balance-spring watch'에 대한 우선권 논쟁. 머튼은 우선권 논쟁은 단지 유감스러운 사례일 뿐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주장. Iliffe는 이러한 현상을 규범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함. 그는 규범이 아니라 "규약(convention)"으로 이해하며, 사람들이 저작권이나 소유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우선권 관습을 이용하는 방식을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 

후크는 자연철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던 규약과는 꽤 다른 것이 유효했다. 수학이나 기계적 기예에서 주로 통용되던 규약. 후크와 하위헌스는 규약에 얽애여 있지 않았고, 그것들이 맞는대로 썼다. 논쟁의 결과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규약적인 자원들을 통해서 구성된다.  

후크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짐. 그는 그에게 주어진 자원과 제한의 상황 속에서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

이제 규범은 더이상 문헌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거나 논쟁을 해결하는 데 효력을 발휘한 것이 아님이 밝혀짐. 

왕립 학회에 통용된 가치가 어떻게 형성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Henry Oldenburg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됨. 공통의 목표가 어떻게 개인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음. 


<르네상스와 바로크기에 일어난 과학 운동에 대한 연구>

르네상스와 바로크기에 일어난 과학 운동의 근원을 찾는 연구에 대해서도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은 도움이 된다. 문화 역사나 인류학은 명시적으로 사회 구성주의적이지는 않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있는 것으로 보임. 

갑자기 든 생각인데, 르네상스기에 일어난 인문학 부흥 운동이 과학의 실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 지식인들은 키케로를 모범으로 삼아 라틴어를 구사했는데, 이것이 과학의 실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까?

왕립 학회는 실험을 통한 지식의 생성에 적법성을 부여하는 굉장히 중요한 곳이긴 하지만, 절대로 유일하지 않고 여러 움직임의 목적으로 기술되어선 안된다.

굉장히 다양한 단체가 있었음: 공식적, 비공식적, 국가적, 국지적. 전통적 기관(예수회), 대학, 박물관, 개인 수집관 등.

공동체는 이미 주어진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았음. 대신 그들은 각 지역이 제공하는 문화적 자원들로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함. 


<후원 제도>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한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많은 서신을 교류. 일종의 gift-exchange 네트워크가 형성. 이러한 네트워크는 사회적 우월성을 표현하는 희귀품이 증여자에게 혜택을 가져다 줌으로써 유지됨. 

후원제도가 선물 교환 제도를 강화하고 있었음. "벽이 없는 기관" (Mario Biagiloi). 학자들은 후원자와의 복잡미묘한 협상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 


Biagioli의 델 치멘토 아카데미아 연구 :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는 레오폴드 데 메디치의 후원을 받음. 왕자에 따라서 활동이 결정됨. 실험을 시연하는 과정은 익명으로 기술됨. 그것의 타당성을 왕자에 의해 보증하기 위해서. 왕립학회는 왕이 직접 회의에 참석하지 않음. 지식의 타당성은 왕과 독립적인 신사다운 실험자에 의해서 보증.


Biagioli의 궁정인으로서의 갈릴레오 연구 :

코시모 대공  1610

코페르니쿠스 우주관

교황청 재판 : 위기 속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희생 (딱 맞진 않음) 개인적인 배신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음. 해석은 열려있음. 



앞으로의 이러한 연구를 위한 두 가지 자원 :

첫째, 사적인 기록물

둘째, 초기 근대과학에서의 젠더 연구 (과학기술학의 세계에서 젠더와 관련된 장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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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ciplinary Mold

전통적인 "big-picture" 설명 방식은 과학을 연속적인 역사를 갖는 단일한 개체로 간주. 쿤 이후의 역사기술학은 과학의 발전이 불연속적임을 강조. 

1780년과 1850년 사이의 시기를 "두 번째 과학혁명"으로 이름지음. 새로운 과학의 분과가 생기고 기존의 분과들도 상당히 개편됨. 내용과 실천 모두에 큰 변화가 생겼고,  제도적인 환경도 변화함.

분과 사이의 경계가 더욱 더 날카로워짐. 대학의 학과 형성으로 구체화. 단순히 분과가 나뉜 것이 아니라, 지식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됨. 


제도적 차원에 있어서, 변화는 흔히 "전문화(직업화)"되는 과정으로 기술됨. 이러한 기술은 과학이 직업으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얻었음을 시사. 

"전문화" 모델은 우리가 머튼주의적 주장(과학은 점진적으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율성"을 성취함)과의 관계의 주목할 때 제한을 갖는다. 일종의 목적론적인 함의를 갖음.

J. B. Morrell (1990) 에 의하면, 전문화 개념은 신경써서 다룬다면 이 시기에 과학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따로 떼어 고찰하는 데 유용함. 변화는 다양한 나라와 과학적인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안된다. 또한 전문적인 지위를 성취하는 것이 모든 단체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p. 68


이러한 발전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문화의 측면에서 그것들을 범주로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신경써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분과들이 본질적으로 어떤 과정(이 과정을 통하여 자율성을 얻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시사를 줄 수 있음. 따라서 구성주의적 관점은 대안적인 틀을 제공한다. 

"규율성(disciplinarity)" : By this is meant not simply the reconfiguration of the scientific disciplines in this period but also the embeddedness of this process in larger formations of power.

규율(discipline)은 특정한 실천 양식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통합에 의해서 형성된다. 형성된 후에는 행동을 규정함. 이러한 원리는 다양한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 

용어의 애매성이 중요함. 어떤 사람이 지켜야만 하는 지침의 형태. 행동을 제어하는 수단.

지식이 분과별로 나뉘는 현상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과학의 분과를 나누는 작업은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 근세와 근대를 거치며 분과를 분류하는 방법을 연구. 쿤은 "전문분야 매트릭스(disciplinary matrix)"라는 용어로 특정 분과의 연구자들의 공유하고 있는 요소들을 총칭. 

두 번째 과학혁명을 학제성의 측면에서 고려하는 학자들은 새로운 분과가 생긴 것보다는 분과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하는 테크닉의 변화에 주목. 이러한 연구는 넓은 범위의 경험적 연구(과학교육, 연구 트레이닝, 실험실, 기구의 사용, 분과적 수사 등)와 이론적인 관점 연구를 전망. 


이론적 관점에 대한 연구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미셸 푸코의 연구. 푸코??푸코???

disciplinary와 disciplinarity의 차이는?

규율은 특정 범위의 개체들을 언급하고, 잘 정의된 유형의 개념적인 테크닉을 사용하고, 이론적인 이해의 특정 영역에 딱 맞게 변화해야 한다.

수감 시설은 권력 체제의 산물.

수감 시설뿐만이 아니다. 군대, 공장, 학교, 병원 안에서 "고분고분한 신체(docile bodies)"를 만들고,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생산해서 규제함.

권력의 "미시물리학(micro-physics of power)". 모든 사회에서의 담론의 형성, 유통, 분배와 소멸은 권력의 작용과 불가분리적으로 서로 얽혀있다고 주장.

규율은 어떤 기관이나 기구(장치)와 동일시될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권력이다. 


이렇게 푸코는 규율은 인간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기능을 하는, 그래서 통제하에 두는 권력의 기구로 이해한다.

감옥의 구조는 범죄자의 인격이나 범죄사회학이 생산되는 인간 과학과 똑같은 권력과의 관계를 표현한다.

통제하는 테크놀로지는 지식을 생산하는 테크놀로지와 같은 종류이다.     



과학에서의 트레이닝 연구의 기원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Wiliam Clark가 그 뿌리 중 하나를 추적. 18세기 독일에서 설립된 고전 문헌학 세미나. 감독자들은 학생들을 검토하고 표준화된 형태로 리포트를 공공 기관에 제출. "계층적 관찰(hierarchical observation)"이 문서가 순환됨으로써 실시됨. 이러한 관행의 확산은 박사 학위가 공식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생김. 이는 독창적인 연구의 결과인 상당한 양의 작업에 대해 수여. 독창성에 대한 요구와 논문 작업에 대한 규정은 학위 후보자에 대한 미화와 관료화를 반영.


과학적 훈련은 이후 자연 과학을 연구하는 대학 기관과 세미나를 주제로 연구됨. 계서적 관찰과 시험 포함. 문서의 순환과 교육 공간의 물리적 배치 이외의 하나의 요소가 더 논의됨. 기구 사용(instrumentation). 학생들은 기구를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조작의 정해진 순서를 배우고, 기술을 습득. 

실험 과학에서의 훈련 연구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모델은 리비히(Liebig)가 설립한 약사와 화학자 양성 기관에 의해 제공됨. 학생들의 시간표를 세분화. 그들의 단계에 맞는 작업을 위임. 잘 된 연구는 리비히 자신의 저널에 출판. 학생들을 감시하기 좋게 실험실을 재구성. 기구 또한 중요한 요소. 유기물 혼합물을 양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연소 기구. 기구가 그 사용자를 훈육시키는 역할을 일부 떠맡음. 이러한 모델은 19세기 중반에 독일 대학에서 설립된 생리학 기관에도 적용 가능. 현미경.

생리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도구적 요소에 대한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Olesko (1991) 은 노이만법을 연구. 특정 실험에 대해서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니었음. 문서로 자세히 작성되어 퍼짐. 이러한 추상적인 방법은 물론 다른 장소로 전달될 수 있지만, 특정한 실천의 모범에 의해서만 배울 수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다른 배경에서 동화됨. 

빅토리아 시대 중산계급 가정에 보급된 현미경을 어떻게 규율 네트워크의 확산이라고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