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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한국현대과학사

6. 인공물

6.

인공물

 

김태호, “신품종 벼 ‘IR667'(통일)과 한국 농학의 신기원,” 한국과학사학회지30(2) (2008), 383-416.

선유정, “과학공간에서 정치공간으로: 은수원사시나무 개발과 보급”, 󰡔한국과학사학회지󰡕 31(2) (2009), 437-474.

Chihyung Jeon, “A Road to Modernization and Unification: The Construction of the Gyeongbu Highway in South Korea,” Technology and Culture 51(1) (2010): 55-79.

김종욱, “냉전의 이종적 연결망으로서 평화의 댐사건: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통한 경험적 추적”, 동향과 전망83 (2011 가을.겨울호), 79-112.

Kim Junsoo & Choi Hyungsub, “Technical Standard in Transition: The Distribution Voltage Conversion Project in South Korea, 1967-2005,” KJHS 36(2) (2014), 183-203.

김태호, “‘가장 과학적인 문자와 근대 기술의 충돌-초기 기계식 한글타자기 개발 과정의 문제들, 1914-1968,” 한국과학사학회지33(3) (2011), 395-436.


 

1. 김태호, “신품종 벼 ‘IR667'(통일)과 한국 농학의 신기원,” 한국과학사학회지30(2) (2008), 383-416.

김태호(2008)는 기존의 서술과 평가가 주목했던, 다수성이라는 실용육종의 가치를 떠나서도 통일벼의 과학기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음을 보인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의를 밝힌다. 한국 농학이 스스로를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었다는 점, 작물유전학상의 성취가 그것이다.

저자는 우선 전자에 대해서, 과학기술적 인공물이 민족국가의 정체성과 같은 정치적인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에서는 벼가 갖는 문화적 중요성 때문에, 그것을 둘러싼 논쟁은 종종 정치적 함의를 띤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식민지시기 일본의 농학 체제와 품종을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으므로, 그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한 농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허문희의 IR667의 개발이 한국 육종의 독립을 알리는 이정표의 역할을 했다고 쓰고 있다. 또한 한국 농학자들도 스스로의 역사를 통일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통일의 개발은 한국 농학의 독자적 역량을 입증하는 일이었음을 그들이 잘 알고 있었고, 국제적 관심을 받는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작물유전학상의 성취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저자의 서술 자체의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읽었던 대다수의 과학기술사 논문은 과학적 내용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정치·경제적 맥락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통일벼개발의 과학기술사적 의의를 평가하기 위해서 그러한 맥락보다는 허문회의 과학적 업적 자체, 벼의 중요한 단간유전자 sd-1의 위치를 발견했고, 단간 형질이 아종간 경계를 넘어 자포니카로 이전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는사실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통일벼가 과학과 정치 나아가 사회의 상호작용으로 나온 것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선유정(2008)의 논점과 비교했을 때 매우 인상 깊다. 저자는 아마도 과학기술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이른바 과학 외적인서술의 유행이 오히려 과학 내적인요소의 결핍을 유행하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무엇인가? 현신규와 허문회는 현재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있다. 허문회는 급속한 통일벼 공급에 대해 드러내놓고 정부 편을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일벼의 발명가라는 점은 자랑스러워 했다. 그들이 만약 새로운 종을 개발하고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안 했다면 어땠을까? 적극적으로 보급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들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을까? 김태호 박사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래도 통일벼의 업적은 있다는 것이다.

 

2. 선유정, “과학공간에서 정치공간으로: 은수원사시나무 개발과 보급”, 󰡔한국과학사학회지󰡕 31(2) (2009), 437-474.

선유정(2009)은 과학과 정치의 다양한 역학적 관계를 살핀다는 큰 목적 아래에서 은수원사시나무의 개발과 보급이 한국의 산림녹화에서 지니는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

우선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재료를 하나 더 얻은 것 같다. 지금까지 전상근, 오원철 등의 글로 수출 중심의 중화학 공업 진흥을 통한 경제발전에 대해, 앞서 김태호(2008)의 통일벼 연구로 주곡자급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선유정의 은수원사시나무 연구를 통해 산림녹화라는 과학기술의 성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저자가 그리는 현신규의 연구와 박정희 시대 정치 사이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이전에도 현신규는 연구비 지원 등의 이유로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자 그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다. 새로운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지원하는 경향이 있었고, 현신규는 그것을 파악하여 은수원사시를 개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선포하자 둘 사이의 역학적 구도는 크게 바뀌었다. 강력한 정치권력과 함께 과학마저 소유하며, 과학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현신규는 자신이 개발한 은수원사시가 무분별하게 민간에 의해 심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박정희는 신속한 녹화를 고집하여 그대로 추진했다는 식이다. 이렇게 저자는 산림녹화를 이끈 은수원사시의 보급이 단순히 과학의 이름으로, 과학자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과학을 전유한 정치권력의 힘으로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시기 논문의 공통적인 패턴 : 경제성장, 주곡자급, 산림녹화, KIST 설립 정도가 박정희의 주업적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단계에서는 박정희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편견 없이 고루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하는 전문가의 의견만을 듣는다. 맘에 안 들면 다른 전문가, 또 맘에 안 들면 다른 전문가... 산림녹화에서 비슷한 패턴을 엿볼 수 있다.

산림녹화 정책에서 박정희가 원했던 것은 속성수. 하지만 현신규의 아이디어는 완전히 달랐다. 4-50년 정도의 장기계획이었으며, 목재 생산이 가능한 나무로 산을 덮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통일벼에서와 마찬가지로 북한과 경쟁 구도 속에서 정책을 시행하길 원했다. 남한 산은 푸르다! 통일벼-다수확품종, 맛은 고려 사항 아님. 고속도로-무조건 서울~부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 않음. 반드시 맘에 드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김일성과 비슷했다. 산림녹화의 경우 전문가뿐만 아니라 산주의 의견도 무시했다. 그들은 경제적 이득을 원했지만 정부가 밀어붙이는 식으로 시행.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성공 기억이다('박정희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잘했다!'). 진짜 했던 일을 떠나서 지금까지 남은 기억이 큰 문제이다. 

박정희에 대해 단순하게 평가하려고 하지 말자. 그런 사람들은 이미 많으니까. 조금 더 복잡하게 평가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3. Chihyung Jeon, “A Road to Modernization and Unification: The Construction of the Gyeongbu Highway in South Korea,” Technology and Culture 51(1) (2010): 55-79.

Jeon(2010)은 경부 고속도로가 어떻게 경제성장과 통일이라는 강력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의 논의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상징이 정치가, 정부관료, 언론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한 공학자들에 의해서도 부여된 것이라는 점이다. 경부 고속도로의 상징은 학생들의 작업, 농부들의 작업, 정부의 기념 사업, 공학자들의 각종 디자인 활동 등이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임을 저자는 잘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경부고속도로가 박정희 정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떤 시사점을 던져 주는가? 이 논문은 artifact와 discourse가 서로 상호작용함을 보여준다. 경부고속도로는 단순히 정부의 상징에 남아있지 않고, 그것을 건설하는 프로그램과 기획을 구성하기도 했다.

 

4. 김종욱, “냉전의 이종적 연결망으로서 평화의 댐사건: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통한 경험적 추 적”, 동향과 전망83 (2011 가을.겨울호), 79-112.

김종욱(2011)평화의 댐사건 전개과정의 연결망 구성을 추적하기 위해 미셸 칼롱의 번역의 네 단계를 적용하고 있다. 솔직히 쓰자면 저자의 논의의 타당성을 평가할 만한 능력이 필자에겐 없다. 모든 단계가 사건의 진행 과정과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평화의 댐 사건을 ANT 이론을 사용하여 분석하려고 하는 저자의 의도를 중점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저자에 의하면 금강산댐 위협은 기술적 요소(여러 수치적 계산과 결합된 침수도)와 사회적 요소(분단에 의한 냉전적 질서와 심성)의 연결망에 의해 블랙박스가 되었다. 평화의 댐 사건에 주목했던 기존의 시각은 이중 사회적 요소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서술이며 모두를 공평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주장이다. 더 나아가 그는 분단의 행위자-연결망을 통해 탈분단의 사회동학이라는 더 큰 기획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위해 냉전적 사건의 이종적 연결망 구성과정을 들여다보고, 번역의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냉전 권력의 효과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저자의 견해는 필자에게 타당해 보인다. 적어도 평화의 댐 사건에는 다양한 과학기술적 요소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사건을 평가하기 위해서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적 요소도 공평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구축을 추적하는 시도만으로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ANT를 통한 사례 분석은 이종적 요소들의 관계가 있음을 거시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그것이 어떠한 관계이며 각 요소들 사이에 무엇이 일어나서 그러한 관계가 구성되었는지는 알려주지 못하는 것 같다. 행위자인 국민들은 어떻게 어떤 저항도 없이 등록되었는가? 어떻게 미국은 행위자로서 동맹하게 되었는가? 여러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어떻게 정치적인 목적에 복속하였는가? 이러한 질문들도 저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따라서 우리는 평화의 댐 사건에 대한 자세한 사례 연구가 진행되어야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의 댐 ANT 분석은 마치 잘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 과정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권력이 있다면, 그 권력을 ANT의 어떤 행위자로 다루엉 ㅑ하는가? 침수도를 받아들이는 경로가 하나 뿐이었는데 어떻게 immutable mobile와 의무통과지점이 되는가? 하나의 방법론으로 전체를 관통시키려는 논문은 없다.

interessement. 가운데에 집어넣는다는 의미. 견고한 동맹을 잘라내고 행위자를 데려간다는 의미이다. 

흥미로운 점은 평화의 댐이 사기라고 판단한 이후이다. 2002년 홍수가 나서 평화의 댐이 그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후 북한은 임당댐을 증축했고, 실제로 댐에서 물이 새는 일이 벌어졌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 때 평화의 댐을 증축했다. 그때 야당은 평화의 댐을 이용하여 여당에 역공을 실시. 평화의 댐을 지지했던 반공세력이 오히려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artifact에 대한 담론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5. 
Kim Junsoo & Choi Hyungsub, “Technical Standard in Transition: The Distribution Voltage Conversion Project in South Korea, 1967-2005,” KJHS 36(2) (2014), 183-203.

6. 김태호, “‘가장 과학적인 문자와 근대 기술의 충돌-초기 기계식 한글타자기 개발 과정의 문제들, 1914-1968,” 한국과학사학회지 33(3) (2011), 395-436.


모멘텀이 중요한 이유 : 이해관계가 덩어리로 계속해서 커지기 때문.

bureacratic momentum : 흘린 피를 헛되이 하면 안 된다! 

숭업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하지만 박정희는 관심을 갖고 drive 하지 않았다..